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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한국사 연구는 왜 일본인에게 압도당했는가
공학 의학 등 자연과학이야 어차피 수준차가 컸던 분야라 그렇다고치고,
한국사 관련은 말하자면 한국인의 나와바리인데 왜 이렇게 일본인 학자의 주장이 우세한 지경에 있었을까.
요즘 이 부분에 대해 일제시대의 글을 보면서 조금 이해가 가는 바다.
한마디로 조선인 학자들은 일차사료 자체도 많이 접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이병도도 진단학회를 만들고 싶어서 만든 것이 아니다.
일본인 주류 학회에서 제대로 활동이 안 되니까 만들 수 밖에 없었던 것 같고.
지금은 이병도 선생이 무슨 식민사학의 괴수처럼 되어 있지만,
당시 신문을 읽어 보면 그도 경성제대에 "일반인"에게도 책 좀 보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아웃사이더에 불과했다는 말이다.
해방 전에 한국인 손으로 파본 유적 유물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말하자면 돈도 안 돼, 책도 안 돼, 유적도 본 적 없어...어떻게 일본인이 한국사를 주도하지 않을수 있었겠는가?
이리 보면 해방이후 아리미쓰 교이치를 붙잡고 발굴지도를 받았다는 것도 그야말로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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