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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임정의 시각으로 식민지시대를 재단할 수는 없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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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 한국근대사, 특히 식민지시대를 보는 시각은 압도적인 임정 중심의 그것이다. 모든 사안을 임정 주체로서 놓고는 재단한다. 

이 임정 주체의 사관이 의미가 없을 수는 없지만, 단일하다는 데 심각성이 있고, 무엇보다 이 시각으로는 막상 식민지 조선을 산 2천만 조선인을 객체화하고, 재단의 대상으로 삼는 데서 더 큰 심각성이 도사린다. 

임정의 시각에서 보면 조선에서 식민지 통치를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모든 행위가 반역이 된다. 군수가 되고, 판사가 되고 검사가 되고 경찰이 되고 면서기가 되는 그 자체가 모두 민족의 반역이 되어 친일이라는 이름으로 처단된다. 

국선에는 출품조차 해서도 안 되고, 창씨개명을 해도 그 자체가 수치의 대상이며 친일을 형성하는 1 준거가 된다. 

조선 내에서 힘을 키우자는 이른바 자치운동 역시 지탄받는다.

총독부 혹은 일본 자체가 없어져야 하는데, 적어도 조선에서 물러나야 하는데, 이 자치운동은 일본의 식민통치 자체를 위선은 받아들이는 까닭이다.

이 자체를 상해 혹은 중경에 본부를 둔 임정, 혹은 그 외곽에 존재한 무수한 독립운동 단체들이 어찌 용서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조선 내지에 사는 사람들은 임정의 시각에 의하면 모조리 이봉창 윤봉길처럼 벤또 도시락 싸고서 맹렬히 돌진하여 전사해야 한다.

가미가제는 제국주의 일본의 발명이 아니라 실은 임정의 발명이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죽어야 하며, 그것이야말로 실로 영웅적인 삶이라는 상찬은 가마가제가 아니라 실은 임정의 요구였다. 

조선을 사는 2천 만을 주체로 넣지 않은 식민지시대 사관은 도태되어야 한다. 임정의 시각으로, 임정만의 시각으로 역사를 재단할 수는 없다. 

친일파는 없어져야 하며, 설혹 그것이 살아남는다한들 새로운 관점에서 판을 근본에서 새로 짜야 한다. 

판사 되고 검사 되고 경찰 되어 지하독립운동가를 색출해서 처단했다 해서 그것이 자동으로 친일일 수는 없다.

식민지조선을 사는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이 있었고, 그 방식은 언제나 존중받아야 한다. 

지금의 임정 중심 시각은 모두가 이봉창처럼 폭탄 던지고 산화해야 하거나, 아니면 면서기도 되지 못한 채 거지 같은 삶을 살았어야 한다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폭력 아닌가? 왜 나는 판사가 되어서 안 되며 군수 도지사가 되어서도 안 되며 경부 이상 경찰이 되어서는 안 된단 말인가? 

임정은 임정대로 존중받고 평가받아야 한다. 다만 그것만이 절대선이거나 절대 잣대일 수는 없다. 

역사는 the history가 아니라 histories다.

임정 역시 그 무수한 histories를 구성하는 a history로 자리가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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