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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단에서는 이른바 변새시(邊塞詩)를 개척한 공로를 인정하고,
나 역시 그의 시작을 대할 때면, 이 친구 능력은 얼추 비슷한 시대를 살다간 이백과 두보의 그것에 못지 않은 천재급이라
그는 고선지와 봉상청과 같은 군벌 막부에서 세크레테리로 활동하면서 지금은 중국에 속한 신장위구르 방면에서 근무한 전력을 충분히 살려,
그의 시는 온통 고향 장안을 향한 그리움과
그에 빗댄 황량한 사막을 무지막지 표출함으로써 폐부를 찌르르곤 한다.
타클라마칸 사막...이런 데서 생활하는 얼빠진 사람은 없다.
한데 잠삼이 노래한 척박의 그 땅을 우리는 비행기로, 버스로 그가 애환한 것들을 즐감하니
이런 세상이 올 줄 지금은 뼈다귀조차 남지 않았을 잠삼이 꿈이라도 꾸었으리오?
그의 시에는 사막이 모래바람과 추위로 점철하지만
그 반대편에 위치하는 각종 낭만은 일부러 배제해 버렸다.
왜?
그래야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고생하는 티가 팍팍 나기 때문이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초원지대. 사람이 사는 곳은 이런 데지, 사막이 아니다.
그의 시를 보면 마치 그쪽 생활이 사막 한가운데서
허허벌판 모래바람 사시로 휘날리는 그 사막 한가운데서 연중을 보낸 듯하지만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는 사막생활을 한 적 없다.
어디로 이동하고자 사막을 횡단하기는 했겠지만
물 한 모금 없는 사막에서 결코 생활한 적 없다.
왜?
그랬다간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죽고 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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