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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y 1, 2017 at 3:01 PM에 쓴 글이다. 중간에 날짜가 나와 이걸 밝혀야 문맥이 통한다. 당시 나는 부여군에서 의뢰한 능산리고분군 발굴기를 집필 중이었다.
1995년 제3차 능산리 사지 발굴조사 결과 목탑지에서 발굴됐다. 국립부여박물관이 펴낸 그 공식발굴보고서는 물론이고, 그 종사자들도 정확한 그 발견 일자를 남기지 않아 어제부터 난리를 쳤다.
당시 발굴조사단장 신광섭 부여박물관장도 날짜를 기억하지 못해 어제부터 닥달을 했더니 오늘 아침에 연락이 왔다. 부여박물관에서 직접 확인했다면서 그에서 글자를 읽어낸 시점은 10월20일 오전 9시45분이란다.
그 발견 사실이 언론을 통해 공표되기는 1995년 10월22일, 조선일보 단독보도에 의해서였다. 여타 신문들은 이튿날 보도하기 시작했거니와, 한데 그 보도 양태를 보면 1단 내지 2단 기사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조선일보에 물을 먹은 데 대한 허탈함의 표시다.
당시 발굴조사단장 신광섭 부여박물관장도 날짜를 기억하지 못해 어제부터 닥달을 했더니 오늘 아침에 연락이 왔다. 부여박물관에서 직접 확인했다면서 그에서 글자를 읽어낸 시점은 10월20일 오전 9시45분이란다.
그 발견 사실이 언론을 통해 공표되기는 1995년 10월22일, 조선일보 단독보도에 의해서였다. 여타 신문들은 이튿날 보도하기 시작했거니와, 한데 그 보도 양태를 보면 1단 내지 2단 기사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조선일보에 물을 먹은 데 대한 허탈함의 표시다.
창왕명석조사리감 출토
"승님, 블라블라하니 당시 취재 비화 좀 얘기해주시오."
하니 내년 정년퇴임 예정인 이 영감님이 "그 발설자가 아직 생존해 계셔셔 실명을 거론할 수 없다"고 한사코 뺀다.
"숨캐도 어쩔 수 없소. 정양모인 건 다 아니께 말씀하시오"
그래도 죽어라고 그 실명은 대지 않는다.
이런 문화재 보도에서 관련 사진이 빠질 수는 없다. 하지만 조선일보 특종보도에서는 사진이 없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정보만 듣고는 썼기 때문이다. 일단 질러보고 본 것이지. 그렇지만 대강은 훑어냈다.
창왕명석조사리감 실물(왼)과 그 탁본
문제의 그날, 새용산 설계와 관련한 발표인가가 예정됐거니와, 그 취재를 위해 김태익은 정양모 관장실을 갔다. 부속실에서 기다리다가 그 옆방인지 생수를 마신다고 갔는데 그 사이에 들어온 정양모가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그래그래 그건 절대 보안 사안이야. 그래 그래 보안 잘 지켜"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상대방 통화 주인공은 신광섭이었다. 내용은 석조사리감 출토 보고였다. 김태익은 정양모를 추궁했지만 더는 자세한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렇다고 포기할 기자는 없다. 김태익은 다른 사람을 들이쳤다.
정양모 라이벌은 서울대 사학과 동기동창인 전임 중앙박물관장 한병삼. 한병삼은 물러났지만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중이었다. 더구나 한병삼은 당시 조선일보와 일종의 커넥션 가까운 관계에 있었다.
나아가 한병삼은 능산리 사지 발굴 지도위원이었으며, 그 직전에 발굴 현장에 직접 가서 부여박물관에서 석조사리감 출토 사실을 보고 받았다. 김태익 전화를 받은 한병삼은 자신이 기억하는 모든 정보를 김태익에게 알려줬다. 이를 토대로 마침내 창왕명 석조사리감 출현 사실은 조선일보 단독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백제 위덕왕 昌은 그렇게 세상에 화려하게 출현했다. 이 보도 당시 나는 연합통신 체육부 기자로 근무 중이었다. 당시엔 내가 문화재 담당 기자를 할 줄은 꿈에 생각지 못한 시절이었으니, 내가 무슨 관심이 있겠느냐만, 이상하게도 이 조선일보 특종만은 뚜렷이 기억에 남았다.
전화를 끊으면서 내가 태익형한테 말했다.
"승님, 그때 내가 문화재 담당이었으면, 승님은 특종도 엄써~~~~"
그냥 서로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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