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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장갑, 숭배와 실용을 가르는 DMZ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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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미국 경매시장에서 문화재 보호에 뜻 있는 민간인들이 갹출해 구입하고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해서, 이런 좋은 일 있다 해서 박물관에서 기자님들 모셔다 놓고는 대대로 홍보한 자리에 선보인 16세기 조선전기 나전함이다.

나전함이라 해서 대단한 듯 선전하지만, 요새야 저기다가 한과 같은 거 담기도 하고, 그것이 아니라 해도 쓰임이 꼭 한두 분야로 한정하지는 아니해서 이런저런 용도로 쓴다.



열받아 뚜껑 열렸는데 속내 보니 저렇다. 자주색 천을 댔는데, 저게 본래의 직물인지 후대에 덧보탰는지 자신은 없지만, 아마도 후자 아닌가 싶다.

칠 상태는 어떤 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박락이 일어나기 마련이라 저 옻칠도 혹여 손대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 역시 자신은 없다.



독자 여러분이 주지해 줬으면 하는 장면은 장갑이다.

내가 저쪽 분야 - 저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문화재업계에서는 보존과학이라 한다 - 사람들을 폄훼하고픈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보통 이런 자리에 모델로 나서서 저리 장갑 낀 채 나서는 사람들은 보존과학 분야 종사자들이다.



한데 장갑은 왜 꼈을까?

나는 저 장갑이야말로 해당 물품을 문화재와 일상용구로 가르는 구획이라 본다.



솔까 저런 나전함을 쓰는 어떤 사람이 장갑 끼고 만지겠는가?

장갑 끼면?

떨어뜨리기 일쑤다. 그래서 박살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왜 저런 물건이 문화재로 둔갑하는 순간 모름지기 금지옥엽 장갑을 낀 채 만지는 시늉을 해야 할까?



난 저 모습이 실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

흔히 하는 말로 오염 우려를 든다. 사람 때, 땀 등등이 다 오염원이라, 문화재에 해를 준다 해서 저런 쇼를 한다.



이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우리 조상 누가 저걸 장갑 찡구고 금지옥엽 만졌단 말인가?
전부 맨손으로 만졌다.

물론 제법 값은 나가는 축에 속했을 것이니, 함부로 다루지는 아니했을 것이로대, 그렇다고 누가 장갑 끼고 피땀 묻을까 걱정하며 금이야 옥이야 했겠는가?



저것이 어느 장인 손을 떠나 실제 소비처로 가는 과정도 그렇고, 그것이 유통 전래하는 지난 500년간 끊임없이 손때를 탄 물건이다.

한데 저것이 박물관에 들어가는 순간, 문화재로 둔갑해서는 모름지기 장갑을 끼고, 그것도 그런 물건을 취급할 수 있는 일부 사람만이 특권인양 치부하는 신세로 소비처가 현격히 줄어들고 말았다.




문화재? 왜 문화재가 숭배여야 하는가? 왜 완상玩賞이어야 하는가?

그래서 나는 문화재 혹은 박물관이 실은 그 물건에 족쇄와 차꼬에는 다름 아니라고 본다.

그 차꼬와 족쇄를 과감히 벗겨버리고 완구玩具로 돌려, 손으로 만지고 가지고 놀아야 한다고 본다.

코미디 같지 않은가?

500년간 맨손으로 쪼물탕 거리다가 각중에 문화재가 되었다 해서 장갑 찡구고 모신다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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