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맹 순자시대 유학엔 존재론 인식론이 없거나 거의 없다. 그런 까닭에 유학을 필두로 하는 동아시아 사고방식은 철저히 생활철학에 기반에 뿌리를 박는다.
이것이 존재론 인식론이 범람하는 이 시대에는 외려 참신함으로 다시 각광받기도 하지만, 그런 기초를 갖추지 못한 유학에는 두고두고 치명적 결함으로 작동한다.
우주는 어찌해서 생겨났는가? 인간을 포함한 삼라만상은 어찌해서 태어났는가? 동아시아는 이를 생각해 본 적도, 심각히 받아들인 적도 없으니, 다만 그런 필요성은 없지는 않았던 듯, 예컨대 "귀신은 있습니까?"라는 제자의 질문에 공자는 "내가 삶도 모르는데 어찌 귀신을 알겠는가?"라고 반박하는 것을 보면, 그 필요성조차 공감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거니와, 그에 대한 관심도 끊이질 않았으니, 다만 그것을 제대로 사고한 적은 없었기에 그 물음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유치찬란해서, 예컨대 주역은 음과 양 두 기운이 접속 교섭 교접하는 것으로 설명하려 했으니 그렇다면 음과 양은 무엇이 모태인가?
태극이니 원시니 하는 개념이 등장하고, 이를 도교에서도 차용해 장자 같은 이는 뭐라 설명하기 곤란하니 혼돈으로 제시하거니와, 이것이 조금 시간이 지나 회남자에 이르러 좀 더 정연한 모습을 갖추게 된다.
기독 계열은 실은 불가지론에 가까워 실로 단순무식하게 일신을 내세워 이 모든 것이 어떤 절대지존의 의지에 말미암았다고 본다. 기독교가 이 땅에 상륙했을 적에 가장 비난 받은 대목 중 하나가 처녀생식에 의한 예수 탄생과 더불어 이 절대지존론이었다.
소위 유교의 합리주의 관점에서 보면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었으니, 그래도 이 주장에 넘어간 지식인도 적지 아니했다.
이 존재론 인식론에서 일대 획기는 불교다.
특히 연기와 유식의 침투는 놀라워서 기존 존재론 인식론의 기반을 송두리째 뽑아버렸으니, 너와 나의 관계에서 존재를 찾는 상대주의는 인류사 혁명이었다.
너가 어떻게 존재하는가? 너 아닌 다른 것들과의 관계에서 비롯한다. 나무가 바람에 흔들린다? 네 마음이 흔들린 거다. 이런 사고가 어찌 혁명이 아니리오?
그렇지만 불교, 특히 대승은 유가의 합리주의 관점에서 보면 치명적 결함도 없지는 않았으니, 어벤져스와 타노스, 수퍼맨과 원더우먼 전부를 합친 수천수만배 붇다를 용납하기는 힘들었다.
그럼에도 저 연기 혹은 유식 혹은 선종이 표상하는 상대주의는 일대 파란을 일으켜 성리학을 태동케 하니 종래 생활도덕론이 유교는 비로소 이를 통해 존재론 인식론으로 업그레이드를 이룩하거니와 이에서 주돈이가 태극을 들고 나오고, 그 전엔 흘려버린 心이 무슨 거창한 철학원리나 되는양 재포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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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5. 10 글을 일부 교정한 것으로, 당시 휴대폰으로 쓰다가 말았으니, 그렇다고 그것을 교정 전재하는 지금도 논의를 더 진행한 것은 없다. 이런 글은 하도 자주, 단발로 뇌까렸으니, 언제인가 조금은 더 정제한 모양으로 정리할 날이 있지 않겠는가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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