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가 연합통신이라 일컫던 시절인 1993년 1월 1일 수습기자로 발을 디딘 나는 이 회사서 꼭 26년을 채우고 내년이면 27년차로 접어든다.
이 공장엔 장기근속휴가라는 제도가 있어 10년 그리고 그 사이 반토막 5년 단위로 일종의 특별휴가를 준다. 25년차에겐 9일 휴가를 주는데 해당년도를 기준으로 2년 안에 가야하니 그것을 소비하지 못한 나는 이달 안에 반드시 그 휴가를 소진해야 한다.
애끼다 똥된다 말이 있다. 하지만 이 휴가가 그리된 건 아니다. 정말로 바빠서, 그리고 하도 일에 치다 보니, 그리고 다른 이유가 있어 결국 막판에 몰리고 말았다.
보통 이런 장기근속휴가는 외국으로 가족여행을 떠나지만 어찌하여 그것도 여의치 아니해서 결국 몰리고 몰리다 기어이 올해가 다 끝나는 시점에 할 수 없이 그 휴가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난 이제 크리스마스 전날까지 휴가다.
연말이라 더 일이 몰린다. 이렇다 할 거창한 휴가 계획이 있을 수도 없어 빈둥빈둥하기로 했다. 뭐 하루이틀씩 가끔 지방행차나 해 볼까 한다.
그렇다고 무에 특별히 아쉬울 것도 없다. 어차피 미룬 일도 더러 있어 겸사겸사 그거나 하나씩 마무리하려 한다.
다만 하나 특별한 점은 벌써 26년 27년이라는 그 하나다. 우리 공장엔 근자 새로운 기자 15명을 뽑았는데 전부 90년대생이요, 개중엔 97년생 만 스물두살짜리 기자도 두어명 보이더라.
그네들 붙잡고 오늘 아침 IMF 시절을 얘기하다가 펀득 이 친구들이 그 시절을 겪지 않은 사실을 알고는 소스라치게 놀라 서둘러 화제를 돌리고 말았으니, 그들에겐 내가 얼마나 꼰대 구닥다리 늙다리 기자로 보였겠는가?
장강 물길은 뒷물이 밀어내기 마련이다. 너흰 기자질 죽 하면 앞으로 40년을 해야는데 우짜노 했으니 그런 내가 한편으론 우습기만 하더라.
나는 기자가 무엇인 줄도 모르고 엉겁결에 된 사람이고, 더구나 연합통신이 뭐하는 덴 줄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 길에 들어섰으니, 그래도 너흰 기자가 되고 싶어 되었다니 그나마 다행이랄까?
나는 아직도 기자가 무엇인 줄 모르겠단 말은 해둔다.
'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년 오늘, 나는 다음과 같이 다짐했다 (1) | 2020.01.10 |
---|---|
2004년 국립중앙박물관은 금동반가사유상 사진촬영을 허가했다 (0) | 2019.12.25 |
[태안, 해저에서 찾은 경주] (2) 주인공으로 주꾸미가 떠오르고 (0) | 2019.12.02 |
[태안, 해저에서 찾은 경주] (1) 느닷없이 배포된 청자 발견 보도자료 (0) | 2019.12.01 |
독일 박물관 귀금속 도난사건과 entrapment, 그리고 국립공주박물관 강도약탈 사건 (0) | 2019.11.2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