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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기자? 기뤠기?

[태안, 해저에서 찾은 경주] (1) 느닷없이 배포된 청자 발견 보도자료

문화재 측면에서 현재 태안 앞바다는 바닷속 경주다. 그만큼 그 일대에 해저 유물이 많이 포진한다는 뜻이다. 


이곳이 그렇게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이제 겨우 10년 남짓일 뿐이다. 그렇다면 무슨 일이 있었던가? 노느니 염불하는 심정으로 내가 아는 한에서 그 역사를 한 번 정리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나는 우선 우리 공장 DB 검색을 통해 이를 접근하고자 했으니, 우선 내가 이 일에 어찌 관여하게 되었는지를 점검하고자 "태안+청자"라는 키워드로 통해 내가 태안에 관여하게 된 내력을 찾아 들어갔다. 그 결과 그 첫 기사로 아래를 검출한다. 


2007.6.4 국립해양유물전시관이 배포한 태안 해저 인양 청자류 9점.



2007.06.04 11:26:21

태안 대섬 앞바다서 청자 매장처 발견(1보)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충남 태안군 근형면 대섬 인근해역에서 고려청자 다수가 묻혀있는 곳이 발견됐다.


국립해양유물전시관(관장 성낙준)은 이 일대에서 고려청자가 수습됐다는 지난달 25일자 연합뉴스 보도(2007.5.25)와 관련해 같은달 30-31일 긴급 현장탐사를 실시한 결과 대접을 비롯한 고려청자 30여 점이 해저에 묻혀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4일 말했다.

taeshik@yna.co.kr

(끝)  



보다시피 2007년 6월 4일의 일인데, 보니 국립해양유물전시관에서 보도자료를 배포한 것이다. 보도자료가 배포된 시점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나, 이 짧은 기사가 나간 시점이 오전 11시 26분이니, 아마 11시 무렵에 문화재청을 통해 이 자료는 배포되었을 것이다. 이런 시간에 배포되는 보도자료는 대개 긴급성을 요하는 사안이 많다. 

어떻든 이를 심상한 사건이 아니라 나는 여긴 까닭에 제목과 본문 두 줄을 엎쳐서 우선 1보 기사로 쐈다. 그에 대한 종합기사는 같은 날 이내 나간다. 이 발견이 중대한 사건 전개를 예고할 것이라는 내 판단이 적중했음을 증명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2007.6.4 국립해양유물전시관이 배포한 태안 해저 인양 청자류 9점 중 유병



2007.06.04 11:59:47

태안 대섬 앞바다서 청자 무더기 발견(종합)

대접 등 30여 점 확인, 침몰선박은 미확인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충남 태안군 근흥면 대섬 인근해역에서 고려청자 다수가 묻혀있는 곳이 발견됐다.


국립해양유물전시관(관장 성낙준)은 이 일대에서 고려청자가 수습됐다는 지난달 25일자 연합뉴스 보도와 관련해 같은달 30-31일 긴급 현장탐사를 실시한 결과 대접을 비롯한 고려청자 30여 점이 해저에 묻혀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4일 말했다.


조사 결과 이들 청자 발견 장소는 조류가 빠른 지역으로, 신고 지점을 중심으로 반경 20m 일대에 청자류가 널려있었다.  


이 중 전시관은 총 9점의 청자류를 수습했다. 12세기 무렵 제작 양식을 보이는 청자류는 대접 3점, 접시 5점, 유병 1점으로 구성된다. 나아가 같은 기종이라 해도 문양과 제작 방식에서 차이점이 발견된다고 조사단은 말했다. 


대접류는 구연부(아가리)가 바깥으로 살짝 벌어진 형태이며, 화형(花形.꽃모양)을 본 뜬 유물도 포함됐다. 이 중 2점은 청자음각국당초문(靑磁陰刻菊唐草文) 대접으로 문양은 세밀하지 못한 편이나 양질(良質)의 청자로 분류된다고 조사단은 덧붙였다.


이렇다 할 만한 문양을 넣지 않은 청자대접은 서로 포개서 구운 흔적을 남기고 있으며 청자음각국당초문 대접에 비해 상태는 좋지 않으나 굽(바닥) 형태나 시유(유약 바름)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접시는 기형과 크기가 다양한 가운데 소형접시 3점은 구연부가 결실됐다. 일부에서는 연화당초문(蓮花唐草文)이 확인됐다. 


조사단은 "수습 청자류는 동일시기에 제작됐다고 판단되며 상감청자는 보이지 않는다"면서 "따라서 이번 대섬 앞바다 수습 청자류는 이미 발굴조사한 비안도(2002-2003), 군산 십이동파도(2003-2004), 군산 야미도(2006) 해저유물과 함께 12세기 고려청자의 흐름을 보여주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시관은 불법인양을 방지하기 위해 다음달로 예정된 본격 발굴조사 전까지 인근 해역에 대한 중요문화재(사적) 가지정과 현장 해역보호 조치를 관계기관에 요청했다.


전시관 문환석 수중발굴과장은 "인근 해역에서 대규모 모래 채취가 이뤄지는 바람에 아마도 이 일대 조수 흐름이 빨라졌고, 그에 따라 뻘흙이 휩쓸려 가면서 그에 묻혀있던 청자류가 노출되기 시작했다고 판단된다"면서 "출토 양상으로 보아 이들 청자류를 운반하던 선박이 이 일대 어딘가에 침몰했다고 판단되지만, 지금으로서는 침몰선박 존재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taeshik@yna.co.kr

(끝)  


2007.6.4 국립해양유물전시관이 배포한 태안 해저유물 발견 관련 사진 3장 중 해저 청자대접 발견 장면을 찍은 사진.



이를 보면 청자가 발견된 지점은 근흥면 대섬 인근해역이니, 이곳이 나중에 마도해역이라 일컫는 바로 그곳이다. 


유의할 점은 내가 이 태안 해저유물 발굴에 끼어든 그 시기가 바로 오늘날 우리가 아는 '마도해역=바닷속 경주' 포문을 연 시기와 일치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마도해역은 이때를 즈음해 이제 해저유물의 보고로 본격 닻을 올리기 시작한다. 


저들 1보 및 종합기사에는 모두 이번 해양유물전시관 조사가 "지난달 25일자 연합뉴스 보도(2007.5.25)"에 대한 후속조치라는 언급이 보이거니와, 그렇다면, 그 날짜 우리 공장에는 저와 관련한 어떠한 소식이 전해졌던가? 


이를 살피기 전에 이 태안 해저유물 발굴 서막을 논할 때면 이제는 누구나 아는 그 발견자를 먼저 살피고자 한다. 해저에 박힌 고려창자 발견자는 바로 주꾸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