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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장기근속휴가에 즈음한 소회 두어 마디

by taeshik.kim 2019.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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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가 연합통신이라 일컫던 시절인 1993년 1월 1일 수습기자로 발을 디딘 나는 이 회사서 꼭 26년을 채우고 내년이면 27년차로 접어든다.

이 공장엔 장기근속휴가라는 제도가 있어 10년 그리고 그 사이 반토막 5년 단위로 일종의 특별휴가를 준다. 25년차에겐 9일 휴가를 주는데 해당년도를 기준으로 2년 안에 가야하니 그것을 소비하지 못한 나는 이달 안에 반드시 그 휴가를 소진해야 한다.

 

 


애끼다 똥된다 말이 있다. 하지만 이 휴가가 그리된 건 아니다. 정말로 바빠서, 그리고 하도 일에 치다 보니, 그리고 다른 이유가 있어 결국 막판에 몰리고 말았다.

보통 이런 장기근속휴가는 외국으로 가족여행을 떠나지만 어찌하여 그것도 여의치 아니해서 결국 몰리고 몰리다 기어이 올해가 다 끝나는 시점에 할 수 없이 그 휴가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난 이제 크리스마스 전날까지 휴가다.

 

 


연말이라 더 일이 몰린다. 이렇다 할 거창한 휴가 계획이 있을 수도 없어 빈둥빈둥하기로 했다. 뭐 하루이틀씩 가끔 지방행차나 해 볼까 한다.

그렇다고 무에 특별히 아쉬울 것도 없다. 어차피 미룬 일도 더러 있어 겸사겸사 그거나 하나씩 마무리하려 한다.

다만 하나 특별한 점은 벌써 26년 27년이라는 그 하나다. 우리 공장엔 근자 새로운 기자 15명을 뽑았는데 전부 90년대생이요, 개중엔 97년생 만 스물두살짜리 기자도 두어명 보이더라.

그네들 붙잡고 오늘 아침 IMF 시절을 얘기하다가 펀득 이 친구들이 그 시절을 겪지 않은 사실을 알고는 소스라치게 놀라 서둘러 화제를 돌리고 말았으니, 그들에겐 내가 얼마나 꼰대 구닥다리 늙다리 기자로 보였겠는가?

장강 물길은 뒷물이 밀어내기 마련이다. 너흰 기자질 죽 하면 앞으로 40년을 해야는데 우짜노 했으니 그런 내가 한편으론 우습기만 하더라.

나는 기자가 무엇인 줄도 모르고 엉겁결에 된 사람이고, 더구나 연합통신이 뭐하는 덴 줄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 길에 들어섰으니, 그래도 너흰 기자가 되고 싶어 되었다니 그나마 다행이랄까?

나는 아직도 기자가 무엇인 줄 모르겠단 말은 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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