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린 시절 우리 동네에는 칡공장이 어느 순간엔가 들어섰다. 새순이 올라오기 전 칡을 캐서 그 뿌리로 전분을 만드는 공장이었으니, 나 역시 온산을 헤집으며 칡을 캐러 다녔다.
안 다닌 데 없다. 좋은 칡으로 캐기 좋은 데 있는 경우는 없다. 전부 덤불 속, 혹은 벼랑이었으니, 그런 데를 기어이 헤집고 들어갔으니 낫질 톱질하며 온산을 파헤치고 다녔다.
왜 그랬는가? 먹고 살 길이 막막한 까닭이지 뭐가 있겠는가? 그렇게 험한 산중에서 캐다 나른 칡값이라 해 봐야 근수로 쳐서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궁벽한 산촌에서 현금을 만지는 일이 오직 그런 것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칡을 캐고 도라지를 캐고, 또 올가미로 토끼 잡아 그렇게 지금은 흑돼지로 유명한 지례 오일장 시장에 내다팔거나, 물물교환해서 살아남았다.
그런 칡캐기 광풍이 휩쓸고 간 그해 태풍이 들이쳤다. 당시만 해도 사방공사 초기라, 민둥산이 겨우 사방공사라 해서 산림녹화사업으로 계우 띠풀 입히는 수준이었으니, 이제 갓 피복을 덮어쓰기 시작한 산이 순식간에 작살났다. 사태가 곳곳에서 난 것이다.
내가 그 사태난 지점을 살피니 모조리 칡을 캔 자리였다. 그렇게 캔 자리를 제대로 보수할 리 없고, 설혹 보수한들 임시땜빵에 지나지 아니해서 거기로 스며든 물에 압력을 견디지 못한 산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천지사방 산성 못 파서 환장이다. 구제발굴이라 해서 공사장 발굴이 줄어드니, 너도나도 지제체 들쑤시고 문화재청 압력 넣고, 또 속내가 궁금하다 해서, 또 성격을 구명해야 한다 해서 갖은 이유 갖다 들이대며 온산을 고고학 발굴이라는 이름으로 파헤치는 시대다.
난 이런 모습을 언제나 냉소로 바라보거니와, 파본들, 또 파서 유물 몇 점 건질들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 지금 이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중요한데, 자칫 저런 발굴들이 대규모 산사태를 불러오지 말라는 법 없다.
땅은 장기지속을 통해 안정화 stabilization을 구축하려는 속성이 있다. 발굴은 그런 스태빌라이제이션에 대한 배반이며 충격이요, 재앙이다.
산성 치고 발굴이라는 이름으로 손대지 아니한 곳 치고 성한 데가 없다. 그 장구한 세월 끊임없이 쏟아지고 무너져서 현재에 이르렀다.
요즘과 같은 장맛비에도 그런 산성 성벽이 무너지는 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산성은 붕괴한다. 어떤 데가? 반드시 발굴하고 보수한 데가 무너진다. 왜 이런 대비가 이뤄지는가?
구조공학이고 토목공학이고 다 개소리라, 안정화 때문이다. 이미 장구한 세월 자연변화에 충분히 안정화 상태에 접어든 그것을 고고학 발굴이라는 이름으로 파괴하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자행되는 중이다.
벌어먹고 살 일이 점점 없어지는 일이야 나 역시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왜 멀쩡한 산을, 성곽을 파제낀단 말인가? 사적 만든다고 파제낀단 말인가?
'ESSAYS & MISCELLANI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저 밑바닥에서 언제나 끓어오르는 그 무엇 (0) | 2023.07.16 |
---|---|
기후변화와 문화재의 당면 문제, 특히 산성발굴에 대하여 (0) | 2023.07.15 |
왜 유명한지는 도통 기억에 없고 제목과 이름이 참말로 있어 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밀란 쿤데라 (0) | 2023.07.15 |
허영, 공허를 채우는 빈 자리 (0) | 2023.07.14 |
차기箚記와 발분發憤, 깊은 빡침의 절대 조건 (0) | 2023.07.1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