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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장마 혹은 집중호우와 산성 발굴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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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대전 계족산성. 2022년 8월 중부지방 집중호우에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내 어린 시절 우리 동네에는 칡공장이 어느 순간엔가 들어섰다. 새순이 올라오기 전 칡을 캐서 그 뿌리로 전분을 만드는 공장이었으니, 나 역시 온산을 헤집으며 칡을 캐러 다녔다. 

안 다닌 데 없다. 좋은 칡으로 캐기 좋은 데 있는 경우는 없다. 전부 덤불 속, 혹은 벼랑이었으니, 그런 데를 기어이 헤집고 들어갔으니 낫질 톱질하며 온산을 파헤치고 다녔다. 

왜 그랬는가? 먹고 살 길이 막막한 까닭이지 뭐가 있겠는가? 그렇게 험한 산중에서 캐다 나른 칡값이라 해 봐야 근수로 쳐서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궁벽한 산촌에서 현금을 만지는 일이 오직 그런 것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칡을 캐고 도라지를 캐고, 또 올가미로 토끼 잡아 그렇게 지금은 흑돼지로 유명한 지례 오일장 시장에 내다팔거나, 물물교환해서 살아남았다. 

그런 칡캐기 광풍이 휩쓸고 간 그해 태풍이 들이쳤다. 당시만 해도 사방공사 초기라, 민둥산이 겨우 사방공사라 해서 산림녹화사업으로 계우 띠풀 입히는 수준이었으니, 이제 갓 피복을 덮어쓰기 시작한 산이 순식간에 작살났다. 사태가 곳곳에서 난 것이다. 

내가 그 사태난 지점을 살피니 모조리 칡을 캔 자리였다. 그렇게 캔 자리를 제대로 보수할 리 없고, 설혹 보수한들 임시땜빵에 지나지 아니해서 거기로 스며든 물에 압력을 견디지 못한 산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이리 파헤친 산이 멀쩡할 리 있겠는가?

 
 
천지사방 산성 못 파서 환장이다. 구제발굴이라 해서 공사장 발굴이 줄어드니, 너도나도 지제체 들쑤시고 문화재청 압력 넣고, 또 속내가 궁금하다 해서, 또 성격을 구명해야 한다 해서 갖은 이유 갖다 들이대며 온산을 고고학 발굴이라는 이름으로 파헤치는 시대다. 

난 이런 모습을 언제나 냉소로 바라보거니와, 파본들, 또 파서 유물 몇 점 건질들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 지금 이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중요한데, 자칫 저런 발굴들이 대규모 산사태를 불러오지 말라는 법 없다. 

땅은 장기지속을 통해 안정화 stabilization을 구축하려는 속성이 있다. 발굴은 그런 스태빌라이제이션에 대한 배반이며 충격이요, 재앙이다. 

산성 치고 발굴이라는 이름으로 손대지 아니한 곳 치고 성한 데가 없다. 그 장구한 세월 끊임없이 쏟아지고 무너져서 현재에 이르렀다. 
 

이런 장면만 보면 겁이 난다. 사태날까봐

 
요즘과 같은 장맛비에도 그런 산성 성벽이 무너지는 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산성은 붕괴한다. 어떤 데가? 반드시 발굴하고 보수한 데가 무너진다. 왜 이런 대비가 이뤄지는가?

구조공학이고 토목공학이고 다 개소리라, 안정화 때문이다. 이미 장구한 세월 자연변화에 충분히 안정화 상태에 접어든 그것을 고고학 발굴이라는 이름으로 파괴하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자행되는 중이다. 

벌어먹고 살 일이 점점 없어지는 일이야 나 역시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왜 멀쩡한 산을, 성곽을 파제낀단 말인가? 사적 만든다고 파제낀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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