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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왜 유명한지는 도통 기억에 없고 제목과 이름이 참말로 있어 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밀란 쿤데라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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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다. 어떤 자리에 지인들과 함께 있다가 디리릭 날아드는 소식을 보니 밀란 쿤데라가 가셨댄다. 쿤데라라.

이 양반은 이름이 참말로 독특해서, 일단 이름으로 한 수 먹고 들어갔다는 느낌을 준다. Milan Kundera. 뭔가 있어 보이는 이름 아닌가 말이다. 

요새 이런 거물이 가셨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매양 이리 묻는다.
쿤데라? 유명하다는데, 왜 유명하지?

 

쿤데라. 이 분이라는데? Kun이라는 경음 격음이 주는 강렬함이 있다. 쿤!!!

 
그의 이름을 국내에 알린 선봉장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나는 이걸 영어판으로 익숙한 편이라, 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라는 옮김으로 기억하고 찾아보니 실제로도 그렇댄다. 어찌하여 나는 이걸 영어판으로 기억하는지는 모르겠다. 한때 영문학 언저리 긁적거린 여파라 해 둔다. 

그 작품이 히트하면서 다른 작품도 활발히 소개된 것으로 안다. 한국 사정이 언제나 그렇다. 하나 성공하면 아예 전집까지 낼 기세로 가는 일이 어디 한둘인가? 

그러면서 나한테 물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유명하다는 건 알겠는데, 아니 더 정확히 그렇대는데, 그러고 나 역시 한때는 그걸 완독했지만, 도대체가 줄거리조차 기억에 나지 않은다. 도대체 왜 유명하다 나한테 각인했지?

체코 출신으로 파리서 생활 블라블라. so what? 왜 존재가 가볍지? 무슨 맥락이었지?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내가 그 작품을 읽은지가 수십년 전인 까닭이거니와, 더 정확히는 그때 다들 유명하다 해서 읽기는 했는데, 나한테 그 어떤 강한 인상으로 남기지 않은 까닭 아니겠는가? 혹 지금 다시 읽는대면 물론 느낌이 다를 수 있으리라. 

쿤데라 하니, 그 엇비슷한 감정을 주는 문학작품으로 25시 라는 괴물도 있다. 우리 때는 게오르규 정도로 표기한 듯한데, 젠장 풀 네임 보니 콘스탄틴 비르질 게오르기우 Constantin Virgil Gheorghiu 이랜다. 나한테 친숙한 게오르규는 어디 가고 게오르기우라는 개떡만 남았던가? 

이 분 루마니아 출신으로 파리에서 생활했고 25시가 하도 유명하다 해서 일단 닥치고 세계문학이라는 걸 제대로 접해둬야겠다 할 그 젊은시절에 무작정 완독하기는 했지만, 도대체가 줄기조차 기억에 남는 게 없다.

왜 유명할까? 제목이? 그래 제목이 좀 있어 보이는 거 말고 나한테 각인한 건 암것도 없다.

그러고 보니 저 쿤데라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그 작품 제목이 뭔지 모르게 있어 보인다는 기억도 있다. 

얼마전 안정효 선생이 타계했다는 소식에도 같은 물음을 나는 물을 수밖에 없었다. 하얀전쟁? so what? 

그보다는 쿤데라, 혹은 게오르규라 하니, 그 엇비슷한 시대 상황을 보낸 인물로 나한테는 차라리 레마르크가 기억에 강렬히 각인한다.

내가 서부전선 이상없다니 하는 그의 작품을 전집으로 읽은 기억이 있는데, 그때가 86년 87년이었다.

왜? 이상하게도 그의 전집이 저 시절에 이미 나와 있었는데, 누님집 찬장에 꽂힌 것이 그것이었던 까닭에 하릴없이 그의 전집을 다 때려잡은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물었다. 한때나마 나를 스쳐갔고, 어쩌면 내가 선택했을지도 모르는 국내 작가들은 도대체가 기억에 남는 것이라고는 윤흥길 선생 완장이 전부요, 그때 나한테 그리도 강렬한 인상으로 남은 기억만큼은 선명한 무진기행만 해도 도대체가 무엇이었는지 기억에 없다. 왜 내가 무진기행에 흥분했을까 물으니 기억에 없다! 

완장은 나한테는 소설 그 자체보다는 이대근이 주연한 드라마 때문이었으리라 본다. 그 특유한 킁킁거리는 연기가 압권이었다고 기억한다.

이청준 선생 작품 중에는 가수假睡인가 하는 제목인가 아니면 그것을 주제로 삼은 작품이 유독 기억에 각인하는데, 이건 어쩐 일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내가 생전 처음으로 기차 기관사의 가수 상태를 소재로 삼았다는 신선함 때문이 아닐까 상상해 본다. 

하긴 그러고 보면, 책이 없으면 죽을 듯한 내가 내가 근 몇년 손댄 희귀품으로 보카치오 데카메론과 제프리 초서 켄터베리 테일즈가 있으니, 아다시피 전자는 코로나 팬데믹이 준 여파요, 후자는 언제나 그것과 더불어 한 세트를 이루는 르네상스기 작품이라 해서, 또 내가 한 때는 영문학 언저리를 얼쩡댄 알량한 인연이라 해서 다시 읽었을 뿐이다. 

왜 유명한가? 유명하대니 유명한가 보다 하는 시절이 계속 이어진다. 이런 내가 하도 미안해서 앞으로는 저와 같이 뉴스메이커로 등장하는 인물들 적어도 대표작으로 꼽히는 것들이야 한번쯤을 읽어줘야겠다 하지만, 

뿔싸..지구촌 시대에 저런 사람이 너무 많아, 걸핏하면 죽어간다는 소식이다. 좀 천천히 죽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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