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장성 불대산 기슭으로 가마터 현지조사를 감행했다.
이미 지표조사에선 알려진 곳인데다 동행한 기호철 선생에 의하면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이곳에 자기소가 보인다 하며, 나아가 그에서 생산하는 자기들은 下品이라 기록됐다 했거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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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편백나무 숲 무성한 이 일대 곳곳에는 도자기가 나뒹구는가 하면, 불을 잔뜩 머금어 유리질화한 가마 내부 벽체도 곳곳에서 발견됐다.
한데 이 일대 지형을 보면 도대체가 가마를 운영할 만한 여건은 되지 못한다는 것이었으니, 무엇보다 흙을 파낼 만한 데가 눈에 띄지 않았다. 더구나 가마가 자리잡기엔 너무나 경사도가 가팔랐으니, 이런 데서 어째 가마를 운영했다는 말인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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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나마 상정할 만한 것이라고는 연료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연료를 찾아 이 험준한 곳까지 기어올라야 하지 않았느냐 한다.
그 아래쪽 계곡으로는 한창 가물 때인 지금도 수량이 많지는 않으나, 저수지 같은 것을 조성해 그릇을 빚는데 사용했을 심증을 준다.
이 정도면 가재는 있을 법해 돌 두어 개를 들추었더니, 민물새우가 잡혔다. 조금 가지고 놀다간 놓아주었으니, 때되면 족대 들고 찾아오리라 작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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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 주변으로는 건물 축대가 여러 곳에서 감지되니, 군데군데 그 잔존 상태는 좋았으니, 관건은 그 성격이다.
절터일까?
동행한 고고학도 이영덕 선생은 절터일 가능성도 있고, 그것이 아니라면 자기소를 운영한 사람들이 생활하거나 자기소 운영과 관련할 법한 건물지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했으니, 현지 지형을 보면 후자일 가능성도 내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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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는 제법 많았다고 생각되거니와, 글쎄다, 여건이 허락할지 모르나, 시발굴 조사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18. 1. 8)
위에서 승람 운운한 대목은 사실과 다르다는 행주 기씨 호철씨 지적이 있다. 승람에서 하품 운위한 데는 다른 곳이며 이곳에 대한 언급은 보이지 않는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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