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5년 동경제국대학 교수 흑판승미黒板勝美(1874~1946)는 학교 명을 받잡고는 장장 백일에 달하는 조선 반도 답사에 나선다. 그 답사 결과를 승미는 복명서復命書 형태로 학교에 제출하니, 그 복명서는 그의 출생 백주년에 즈음한 1975년에 와서야 비로소 전모가 공개된다.
이 복명서 구한다고 난리를 쳤다. 국내엔 다섯 개 기관이 소장 중이라, 마침 개중 절친 한분이 봉직하는 대학도서관을 발견하곤 급구했다. 급한 김에 필요한 부분은 카톡으로 먼저 받았다. 내가 이 복명서 원문을 보고자 한 이유는 이를 인용한 수치가 논문에 따라 달랐기 때문이다.
이성시 선생이 처음 이 자료를 이용했을 적엔 답사기간이 80일 아니었나 기억하는데(혹 기억착오일 수도 있다) 보니 100일이다.
그의 답사지는 지도로 완성해야겠다. 그가 가장 오래 머문 곳이 뜻밖에도 부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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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여름 흑판승미가 능산리고분 중 중하총中下塚을 비롯한 두 기를 발굴하고 남긴 도면이다. 모 선생이 우선 폰카로 찍어 카톡으로 보내준 것인데 같은 부탁이 들어가서 괴롭힐까봐 자료 제공자 실명은 공개하지 않기로 한다.
내가 읽고 들은 것이 짧아서인지 모르나 도대체 이 도면이 인용된 글을 본 적이 없다. 이는 이해 장장 백일간 조선반도를 뒤진 칠판씨가 그 일환으로 능산리를 파제낀 조사성과를 정리해 도쿄제국대에 제출한 130쪽짜리 복명서에 수록됐다.
이 복명서를 포함한 그의 유작집이 경남을 출발해 내일 남영동에 도착한다. 그의 답사 일지는 표로써 이미 작성되었으며, 지금 그의 이동 경로는 1912년도 조선지도에 표시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물론 나의 어쩔 수 없는 부탁을 받은 내 수하생들이 고생하는 중이다.
완성되면 풀 것이다. 맘대로 사용하시라고....
(2017.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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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서 약속한 사항 중 그의 조선반도 100일 답사를 1912년도 지도에 얹히는 작업은 마무리하지 못하고 말았다. 다만, 저 복명서에 등장하는 모든 도면은 2017년 부여군이 간행한 졸저 《부여 능산리 고분·사지, 지난 100년의 일기》에 전면 수록했다.
해직이 낳은 두번째 책 《능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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