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인가 장성 독거노인이 장성읍 유탕리라는 마을을 소개했거니와, 이참에 2017년 여름 독거노인과 더불어 이 일대를 돌아보는 와중에 이 마을을 들렀으니, 당시 그에 견문한 바 그 일단은 페이스북을 통해 소개하기도 했지만, 이 마을 이야기가 다시 나온 김에 그때 자료를 찾아내고, 오늘 독거노인이 그 가친 말씀을 빌려 전한 사항을 정리하고자 한다.
이 유탕리는 한자 표기로는 유탕리流湯里라 하는 듯하거니와, 온천이 난다는 말을 들은 듯도 하다.
우선 그 위치를 보건대
장성 읍내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황룡강이라는 영산강 지류 왼편, 장성읍 기준 동쪽 진산으로 해발 722미터인 불태산 서쪽 기슭에 정좌한 마을이다. 독거노인 행주기씨 말을 빌리건대 추위가 대단한 마을이라, 조선시대에는 얼음보관창고인 빙고氷庫가 있었다 하는데 지금은 돌담과 그 앞길을 따라 죽 늘어선 느티나무 노거수가 압권이다.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는 왼편이 마을이며, 저짝 시내를 따라 죽 들어가면 불태산으로 기어들어간다.
마을 입구 갈림길에 언뜻 당간지주처럼 보이는 돌기둥 두 개가 섰으니, 본래 어떤 데 썼는지는 모르겠다.
이 마을에서 내가 인상적으로 본 대목이 바로 이 돌담이다. 돌담이 튼튼해서가 아니다. 뭐 돌담치고 튼튼한 데는 없다. 돌담이건 흙담이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전통 담은 없다. 왜? 저 돌담들은 끊임없이 무너지고 도로 쌓고 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문화재라는 관점에서 보면, 나아가 저 업계에서 신주처럼 받드는 원형이라는 기준으로 보면 저들은 그 축에도 들지 못하는 현대기 건축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무식한 유형문화재 관점이며, 무형으로 넘어오면 애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무형은 원형이라는 말 버린 지 오래다. 가능하지도 않고 있지 않은 원형을 어디에서 찾는단 말인가?
암튼 저 돌담은 정형성이 없고, 또 절반은 이미 시멘트에 양보한 상태이긴 하지만, 그래도 뭐랄까 정감이라 할 만한 그런 게 있지 아니한가? 내가 주목한 대목은 바로 이 정감이었다.
이 돌담을 구순을 코앞에 둔 독거노인 아버님께서 "유탕리 돌담 쌓기"라는 말씀을 하셨다 하거니와, 맥락을 듣자니 이랬다.
유탕리는 겨울바람이 사나워 겨울을 겪고 날이 풀리면 그 돌담은 무너져 해마다 다시 쌓아야 했으므로 일 야무지게 못하면 "유탕리 돌담 쌓 듯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무너지고 쌓고 무너지고 쌓고 해서 오늘에 이른 것이다.
동네 어구 광장이라 부른 만한 데는 저 둥근 돌삐가 있다. 화강암인데 내가 들어본 적은 없으므로 무게는 모른다.
크기를 가늠하라고 똥차를 일부러 함께 박았다. 그리고 내가 들어가 봤다.
저건 현지에서는 들독, 다시 말해 드는 돌삐라고 하는 것으로, 서울 사투리로는 들돌이라 하는 요물이라, 장사들이 힘 자랑할 때 그 준거로 이용하는 돌삐다. 저걸 들어올리느냐 마느냐에 따라 장사가 정해지는 것이다.
저 돌 들다가 척추 나간다.
이런 들독이 실물로 남은 사례가 매우 드물다. 유탕리 들독은 현지를 지킨다는 점에서 그 희귀성은 다른 들독의 가치를 훨씬 능가한다 하겠다.
무턱 댄 문화재 지정은 반대하나 저 들독은 보존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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