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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전문기자에 빗댄 한국사회 자화상, 왜 전문가는 설 땅이 없는가?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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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어느 시점 보로부두르에서. 그날 나는 저 거대한 기념물 조각들을 다 촬영하겠다고 달려들었다. 1층 내부 회랑만 대강 찍고는 나가 떨어졌다. 몇 개월 뒤 다시 가서 찍었지만, 1층 난간 외부 회랑만 대략 찍었으니, 나머지는 훗날을 위해 남겨두었지만, 10년이 더 지난 지금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다. 퇴직하면 가능하려나?



하루하루 그리고 순간순간을 사는 기자는 그림을 그리기가 곤란하다. 그것을 탈피하겠다고 이른바 기획이란 걸 가끔 시도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이는 기자들 몫이 아니라 외부 필진으로 돌아간다.

그것이 아니되는 이유는 첫째 매일매일의 업무에 치기 때문이요 둘째는 전문성 때문이다. 이 둘째는 필연적으로 피똥싸는 공부를 동반하기 마련인데 우리네 언론사 사정을 조금만 알면 이 따위 요구는 난망하기만 하다.

첫째 언론사는 참을성이 없다. 둘째 이른바 재충전의 기회도 지원도 전연 하지 않는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그나마 전문성 키우고 특정한 분야 정착하겠다는 이상한 놈도 나타나기 마련인데, 이를 위해서 그런 기자가 택할 길은 오직 하나다.

다른 기자 술퍼마실 때, 혹은 필드 나갈 때 죽어라 책과 씨름하는 일이다. 이런 노력이 빛을 발하려면 적어도 십년은 투자해야 한다.

그 노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할 무렵, 술 퍼마시고 필드나가 골프채 잡은 놈들이 거의 필연적으로 부장이니 부국장이니 편집국장이니 상무니 전무니 사장이니 해서 짓누르기 시작한다.

그네들 말은 늘 천편일률이라 전문성 겨우 쌓은 기자를 찍어누르면서 너는 왜 기자의 기본을 하지 않고 니가 쓰고 싶은 기사만 쓰려 하느냐? 이 따위 소릴 지껄이면서 되먹지 못한 요구를 해댄다.

지가 전문기자랍시며 나댄다 하고 선배를 무시한다 하고 이것도 기사냐고 갈구기 마련이라, 그러면서 늘 하는 말이 전문가라면 겸손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한다.

기자생활 이십년 삼십년이라 떠드나 특종 하나 못해본 놈들이다.
이런 놈들 특징은 생평을 권력의 똥꾸녕만 찾아다니며 그네들 똥꾸멍만 핥은 놈들이라는 점이다. (2017. 1. 5)


X또, 앞 포스팅을 통해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그것이 아니었음에도 쓰다가 열받아 삼천포로 빠지고 말았다.

거개 기자들은 기획에 대한 욕망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런 기획을 통해 비교적 큰 그림이랄까 하는 이런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욕망은 대체로 있다. 하지만 이게 통신사나 일간지 혹은 방송기자를 하다 보면 너무나 품이 많이 가는 까닭에 쉽지는 않다.

나는 그런 대로 이런 기획이라는 걸 서너 번 해 보기도 했다. 그런 기획이 좋은 점 중의 하나가 기획이 좋고, 그 성과가 좋으면 그것을 토대로 삼아 나중에는 단행본으로 엮을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십수 년 전에 낸 단행본 《풍납토성 500년 백제를 깨우다》와 《화랑세기 또 하나의 신라》는 실은 그런 기획이 있었기에 그것을 토대로 삼아 단행본으로 발전시킨 결과물이다.

기자가 주는 압박에서 훨씬 자유로워진 지금. 그제 혹은 어제, 궁극으로는 단행본을 염두에 둔 이런 기획을 하나 해 보면 어떨까 하는 심각한 고민을 했다. 어떻게 결말이 날지는 모르겠지만, 기왕 염두에 둔 기획이 있다. 단행본으로 완성하겠다고 벼룬 소위 아이템이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쉽사리 결심을 하기 힘든 까닭은

첫째, 지금의 자유가 나는 너무나 좋기 때문이며
둘째, 일단 시작하면 온 정신이 그쪽으로 붙어버리는 성정 때문이다. (같은날. 나는 이 무렵 해직 상태였다)


***


우리 공장만 해도, 전문기자제 정착을 떠들었지만, 말만 요란했으며, 구호만 그럴 듯했지, 단 한 군데 제대로 정착한 데가 없다.

그것을 도입한다 했을 적에 관련 규정을 만드는 일에 관여했으며, 나 역시 그 언저리에 얼쩡거리기도 했지만, 내가 혹 전문기자 혹은 그 비스무리한 사람으로 일컬어져도 그건 제도가 만든 것이 아니라 순전히 내가 좋아서 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전문기자를 꿈꾸는 후배들이 있어 나한테 물어오는 친구들한테 다 그랬다.

"전문기자? 그럴 듯 하제? 언감생심 꿈도 꾸지 마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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