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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전쟁이 키운 색공色供, 피란지 공주에서 여인을 맞은 고려 현종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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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행랑 치는 왕 치고는 피부가 곱다. 고려거란전쟁 캡처

 
거란이 쳐들어와 개경까지 함락된 마당에 저 멀리 남쪽 나주 땅까지 줄행랑을 친 고려 현종 왕순王詢은 그 오가는 중간 기착지이자 임시 피난수도인 공주에 거쳐하면서도 새로운 첩을 받아들였으니

고려사  권 4 세가世家 권 제4 현종顯宗 2년 2월 4일 무신戊申에 이르기를

왕이 공주에 머물면서 왕비를 새로 맞았다. [戊申 次公州, 留六日, 納金殷傅長女爲妃.]

고 했으니, 예서 비妃로 맞았다 했지만, 조선시대 개념으로 정비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첩실이었다. 
 

전쟁이 키운 사랑, 알콩달콩, 고려거란전쟁 캡처

 
그렇다면 왕순은 나주로 가는 길에 저 일을 벌였을까? 아니면 귀환하는 길에 저 여인을 품었을까?

같은 고려사 권94 열전 권 제7 제신諸臣 김은부 전에 이르기를

김은부金殷傅는 수주水州 안산현安山縣 사람으로 성품이 부지런하고 검소하였다. 성종成宗 때 견관승甄官丞을 지냈고, 목종穆宗 때에는 여러 차례 전임하여 어주사御廚使가 되었다가, 현종顯宗 초에는 공주절도사公州節度使가 되었다. 왕이 거란契丹을 피하여 남쪽으로 피난하다가 공주公州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김은부가 예를 갖추어 교외에서 마중하면서 (중략)

거란군이 퇴각하고, 왕이 〈개경으로〉 돌아오면서 다시 공주에 머무르자, 김은부는 맏딸을 시켜 어의御衣를 지어 올리게 하였다. 이로 인해 그 딸을 맞아들였는데, 이가 원성왕후元成王后이고, 원혜왕후元惠王后·원평왕후元平王后 두 왕후 역시 김은부의 딸이었다.

이에서 보듯이 돌아오는 길에 김은부는 딸을 바쳤다. 
 

드라마에는 김은부 세 딸을 설정했으니, 이는 고려사 관련 증언과 정확히 합치한다.

 
이 일로 김은부는 출세가도를 달리게 된다. 첩실이기는 하나, 그래도 엄연히 왕의 장인이었다. 

다른 두 딸까지 꾸러미로 바치고선 형부시랑刑部侍郞이 되고, 이어 거란 성종의 생일을 축하하는 사절로 다녀오고서는 그 공로로 지중추사知中樞事에 승진하고 이어 호부상서戶部尙書와 중추사 상호군中樞使上護軍이 되었다. 고려시대 상서는 이미 재상으로 취급됐다. 

그런 그가 현종 8년(1017)에 죽자 추충수절창국공신 개부의동삼사 수사공 상주국 안산군개국후 [推忠守節昌國功臣 開府儀同三司 守司空 上柱國 安山郡開國侯]에다가 식읍食邑 1천 호를 추증받고 그 부인은 안산군대부인安山郡大夫人으로 봉해졌다.
 

김은부는 강직한 인물로 그려지는데, 글쎄 그럴라나? 고려거란전쟁 캡처

 
고려시대 봉작제도를 보면 보통 왕의 장모한테 대부인을 책봉하니, 바로 이 대목을 이해해야 박제상 처 치술이 왜 국대부인國大夫人인가를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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