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배운 역사에서 이상형은 언제나 철저한 중앙집권이었다.
이기백이 대표하는 기존 역사학은 왕권 성립을 기반으로 삼아, 지방관을 중앙에서 직접 파견해 그 중앙의 통치이념을 지방에 일방으로 강요 윽박 전파하는 그런 시스템을 우리는 고대국가 성립이며, 이를 국가 성립의 지표로 삼았다.
나아가 이것이 중요한데 그것이 바람직한 사회라고 했다.
하지만 이것이 이상형인가. 중국 당唐 제국을 보면 중앙집권 성립은 2대 태종太宗 무렵이며, 이후 약 100년간 그 극성을 구가하다가 결국은 현종玄宗 천보天寶 연간 안록산安祿山 사사명史思明 난을 계기로 절도사 節度使 jiedushi 들이 활개를 치는 시대가 개막했다.
이들 절도사가 구축한 영역을 번진 蕃鎭 藩鎮 Fanzhen 이라 하며 이 시기를 번진할거藩鎮割據 시대라 한다.
제11대 헌종憲宗(재위 805~820) 말년, 그러니가 그 재위 15년을 기준으로 할 적에 전국에 걸친 번진은 모두 48군데에 이르렀다.
절도사들은 한때는 개원지치開元之治라 해서 평화와 번성을 구가한 현종 초중반 시대가 허무하게 막을 내리고 안록산의 난이라는 어수선한 시대에 개막한 숙종肅宗를 지나 대종代宗 시대에 접어들면서 실제로는 중앙 통제를 받지 않고 독자 왕국을 구축하면서 따로국밥으로 놀게 되니, 실상 당 제국은 이때 유명무실해졌다.
나 역시 종래의 믿음 혹은 가르침에 확고한 지지를 보냈지만, 이내 그 미몽에서 깨어나 역사를 새롭게 보려 하는 중이다.
돌이켜 보면 중앙집권화가 철저히 관철되는 시대만큼 시대정신이 정체하는 때는 없다. 혁명은 항상 분열에서, 그리고 변두리에서 일어나는 법이다.
비록 그 열매를 수확하는 이, 중앙정부 언저리라 해도 언제나 그 도화선은 지방 혹은 변두리였다.
번진의 난립, 절도사의 독립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혁명이다. 그래서 중앙권력을 짜개져야 한다.
(2016.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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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한국사는 진정한 지방자치제를 단 한 번도 시행한 적이 없다. 언제나 강고한 중앙집권을 향해 치달았다.
지자체 시대가 개막했다지만 허울에 지나지 아니해서 중앙정부가 언제나 국방 조세권을 무기로 지방을 틀어쥐었다.
말로는 지방분권화를 외쳤지만 언제나 거꾸로 갔다.
이 정부도 언제나 지방분권 수도권 분산이라 외쳤지만, 부동산 오르자 서울과 수도권 개발하지 못해 환장한 모습을 보인다.
신도시 못 만들어서 환장해서 이곳저곳에다가 임대주택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아파트짓기 경쟁을 한다.
행정수도를 옮긴다 난리치면서 서울을 북댁이게 하는 정책이다. 광역자치단체장들이 조금이라도 분리 움직임을 보이면 이 나라 위정자들이 언제나 하는 말이 "우리나라 시장 도지사는 미국 주지사가 아니다"는 말이었다.
이에 역행하는 비근한 사례가 소방직공무원의 중앙공무원 전환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지방분권에 반하는 반란이다.
그런 권력이 이제는 지방자치경찰제를 한다고 한다.
허울뿐인 지방분권은 집어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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