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묘사(흥륜사)터에서 확인된 불기의 용도가 더 확실해진다.
다른 사찰 사례를 살펴보더라도 이 불구들은 대부분 의식용으로 보관하던 중 재난을 만나 현재 상태로 출토된것이다.
특히 전혀 쓸모없을 것 같은 것들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는 나중의 불사에 사용하기 위해 모아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삼국유사의 眞定師.孝善雙美에서 진정의 어머니가 집안에 남아 있던 쇠솥 하나를 시주승에게 시주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렇게 모은 시주물들은 과연 어떻게 보관되었을까.
이 또한 불단 밑에 보관한다. 불단이라고 하니 대웅전 수미단만을 생각하겠지만 절집 살아본 사람들은 안다.
각 전각은 물론 스님들이 기거하는 방에도 작은 불단을 마련한 경우가 많다. 특히 그 불단밑에는 작은 공간들이 있어 지금은 스님들이 신도들한테 밭은 시주물이나 여러가지 물품을 보관한다.
여기에 이번 영묘사에서도 불상이 발견되었다는데 이게 결정적인 증거다.
불구가 발견된 그 위에는 작은 불단이 있었고 그 위에 흔히 호신불이라는 작은 불상을 봉안해 예경을 올렸다. 송광사도 삼일암, 설법전, 백양사 운문암 등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말이 나온 김에 하나더 추가하자면 흔히 소형의 금동불을 호신불이라하여 스님들이 장거라 여행 때 항상 소지하고 있다가 숙소에놓고 예불을 한다나 어쨌다나 한다고 하는데 이는 한마디로 구라다.
이런 소형불상의 60%이상은 불상 광배에 붙어 있던 것이고 나머지는 사찰내 스님들의 거처에 봉안되었던 불상들로 보면 무리가 없다.
이걸 어디로 가져가서 호신불을 삼았다는 것은 절집을 몰라도 한참 몰라서 하는 무식한 소리다.
스님이 멀리 외출(여행)을 할 때 불상을 가지고 이동한다는게 한마디로 웃기는 얘기다. 혹여 불상을 가지고 다른 사찰에 봉안하기 위해서 라면 가능한 일이다.
폐사가 되어 불상을 모시기 어려울 경우 다른 사찰로 이안하는 예는 많았다. 이럴 경우가 아니라면 이동용 법당을 위한 것이라는 설은 한마디로 웃기는 얘기다.
송광사 목조삼존불감을 설명하면서 꼭 이동용 법당이라는 말이 언급되는데 잘못된 해석이다.
그냥 보조국사의 거처에 항상 봉안되었던 불상 이렇게 보면 딱이다.
물론 그곳에 봉안되기까지 불상이 여행을 한건 맞지만 그게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불상을 만들거나 절을 짓기위해 시주 받은 물품이나 절에서 사용하다가 폐기되는 것들 함부로 하지 않는다. 다음 불사를 위해 모아 두는게 일반적일 것이다.
바로 그 보관장소가 불단밑이다. 그 불단 위에 불상이 봉안되기도 하고...이후 재난을 당해 불상은 여러 불구가 있는 곳으로 떨어져 다른 유물들과 함께 지금 발견된 것이다.
퇴장유물 아니다. 그렇다고 진단구도 아니다. 조금만 현실적이고 상식적으로 유물을 이해했으면 좋겠다. 특히 절터 유물은 현재 남아 있는 절집을 잘 살펴보면 의외로 쉽게 그 용도를 확인할 수 있다.
절집, 살아보니 알겠더라.
***
이상 송광사성보박물관 김태형 선생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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