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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78)
오강정에 쓰다[題烏江亭]
당(唐) 두목(杜牧) / 김영문 選譯評
병가의 승패는
기약할 수 없나니
수치를 참아내야
장부라 할 수 있네
강동 땅 자제 중엔
인재가 많으므로
권토중래 할 날 있을지
아직은 몰랐다네
勝敗兵家事不期, 包羞忍恥是男兒. 江東子弟多才俊, 卷土重來未可知.
한시를 분류할 때 특히 역사를 소재로 읊은 시를 영사시(詠史詩)라고 한다. 이미 한나라 역사학자 반고(班固)와 진(晉)나라 시인 좌사(左思)가 뛰어난 영사시를 남겼고, 시의 왕국으로 불리는 당나라의 호증(胡曾)도 칠언절구 영사시 150수를 지어 이 부문의 대가로 일컬어졌다. 이 시의 작자 두목도 훌륭한 영사시를 적지 않게 남겼다. 우리에게 초·한(楚·漢) 고사의 주인공으로 잘 알려져 있는 항우(項羽) 이야기는 역대 역사논평의 단골 메뉴였다. 항우가 만약 오강(烏江)에서 자결하지 않고 뱃사공의 권유대로 강동 땅으로 도주했다면 이후 권토중래할 수 있었을까? 이 시의 작자 두목은 찬성 의견을 갖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두목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당시 천하의 여론은 이미 한왕 유방에게 급격하게 기울었으며, 천하의 강역 또한 유방에게 귀의한 한신(韓信), 팽월(彭越), 영포(英布)에게 장악되어 있었다. 항우가 도망가서 후일을 도모할 땅은 없었다. 항우 또한 당시의 천하 형세를 잘 알고 있었다. 이를 알고 자결로 최후를 장식했으므로 비극의 영웅이 될 수 있었다. 자신이 죽을 때와 죽을 곳을 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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