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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100년 만에 귀환하는 지광국사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1.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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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광국사가 귀환한다. 것도 100년 만에 귀환한다. 그것이 유리걸식遊離乞食한 내력이야 하도 많은 정리가 있었고, 이를 통해 그 기구한 운명은 충분한 정리가 이뤄졌기에 나까지 그것을 중언부언할 필요성을 느끼지는 않는다. 대신 내가 이 자리에 선 이유는 그것이 귀환하는 양태를 주장하기 위함이며, 그 주장의 근거를 말하기 위함이다.


전쟁 폭격에 만신창이 났다가 땜질한 상태로 경복궁에 선 상태로 있던 지광국사 부도탑은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대수술을 하는 동안 그것이 본래 선 원주 법천사지로 귀환이 결정되었으니, 애초 이 부도탑은 올해 7월 중으로 현지로 돌아갈 예정이었지만, 중대한 변수가 발생해 그와 세트를 현지 탑비塔碑까지 이 참에 보존처리를 해야 한다는 논리가 파고들어, 그것이 끝날 때까지 일반 반환은 미뤄지게 되었다.





원주시가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한 까닭은 그를 둘러싼 첨예한 논란, 곧, 그것을 안치할 자리로 본래 있던 탑비 앞 그 자리, 그러니깐 지광국사를 현장하는 법천사의 조사당祖師堂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그 인근에 건립 예정인 전시관 내부로 할 것인가에 대한 탐색을 위한 것으로 안다. 이는 대안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였기에, 나아가 그 논란이 첨예했으며, 그 논란은 각기 타당성을 갖춘 것으로 간주되기에 양자택일이 강요되는 시점이기는 했지만, 탑비까지 덤터기로 보존처리가 결정되는 마당에 적어도 그 결정을 위한 시간은 벌게 되었다. 하지만 시간을 번다는 것이 합리적인 결정에 이르는 길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어느 한 쪽으로 우리는 택일해야 한다는 숙명을 벗어날 수는 없다. 요컨대 지광국사탑에 주어진 길은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 중앙홀로 들어간 경천사지 십삽층석탑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본래 그 자리를 지키는 불국사 석가탑·다보탑의 길이 걸을 것인가 이 두 가지만 있을 뿐이다. 이를 두고 뚝 떼어 가를 수는 없지만, 대략 문화재 보존과학 쪽에서는 경천사지 석탑의 길을 선호하는 반면, 원주 현지에서는 후자를 선호하는 것으로 안다.


이를 판단하기 위해 우선 나는 무엇보다 왜 이 부도탑이 왜 현지로 돌아가는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단순히 그 본래 자리가 거기이기 때문에, 혹은 그와 세트인 탑비가 그 자리에 있기에 가야 한다는 당위도 중요하겠지만, 그 자리에 있어야 가치를 더욱 발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본다. 그래서 가는 굳이 서울을 탈출해 가는 것이지, 본적지가 원주이므로 원주로 가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흔히 하는 말로 문화재는 본래 자리에 있어야 빛을 발한다 하지만, 그 본래 가치 역시 실은 주어지는 것이며 훈련된 것인 까닭에 이 점도 이제는 다시금 성찰이 필요한 대목이다. 나 역시 저에서 더 나아가는 논리 혹은 철학을 제시하지는 못하지만, 또 문화재라고 지금 우리가 명명하는 것들이 다양한 시대 층위를 반영한 응축의 결과물인 까닭에 개중 어느 하나만을 적출한다는 것은 나머지 가치를 상실하는 것이라는 점을 기억했으면 싶다.




저 부도탑을 두고서 현존하는 부도탑 중에서는 가장 아름답다 하지만, 모나리자가 가장 아름다운 그림 혹은 초상이라 해서 가장 비싼 그림은 아닌 것이다. 결국 아름답다 가장 아름답다 그 다음으로 아름답다는 순전히 개인 취향이며, 그것도 학교교육으로 대표하는 가치의 주입한 결과다. 그래서 그 가치가 의미 없다는 말을 하고 싶지도 않고 성립할 수도 없다. 우리한테 주어진 저 지광국사탑은 그러한 것들의 총합이다. 그 자체로 아름다운 탑일 수 있거니와, 그런 점에다가 무엇보다 그 기구한 내력의 역사까지 응축하는 그 총합이 현재의 지광국사탑을 구성한다.

나는 언제나 우리가 문화재라고 하는 존재는 그 어느 것이나 ‘지금 이 자리’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문화재 현장을 작금 지배하는 이른바 ‘원형’에 대한 저항 혹은 반발 혹은 그 대안으로 생각하고 제시한 것이어니와, 찾을 수도 없고, 그 존재조차도 허상에 지나지 않은 원형은 필연적으로 우리가 상상하는 그 어떤 시간(보통 건축물로는 창건기의 모습을 말한다)을 기준으로 한 것이어니와, 그렇기에 또 필연적으로 문화재를 과거 어느 시점에 고정하며, 그 고정은 그 이후의 켜켜한 역사 혹은 그 응축을 군더더기 혹은 옹이로 간주하는 일로 발전한다.

그 켜켜함은 원형을 훼손하는 것이기에 떼어버리고 씻어버리며, 말살해야 하는 순수에의 훼멸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 문화재 현장, 지금의 문화재 현장이 곳곳에서 이런 원형 망령주의를 발판으로 무수한 역사를 말살하는 중이다.


지광국사탑은 저것을 만든 시대정신을 표상하면서, 그 시대 불교미술을 응축하기도 하면서, 그러면서도 그 이후 그를 중심으로 전개한 무수한 역사의 켜켜함이 지금의 그것을 만든 것이다. 그 켜켜함도 고비 혹은 가중치를 우리는 둘 수밖에 없거니와, 그 자체 함유한 이른바 ‘원형’ 가치를 차치하고, 내가 생각하는 그 가장 중대한 가치는 외려 저것이 현장을 탈출해 유리한 지난 100년의 역사에 더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돌이켜 보면, 특정 문화재 하나를 두고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전개된 것으로 이만한 것이 없지 아니한가? 북관대첩비가 저보다 말이 많았는가? 아니면 석굴암이 말이 많았는가? 북관대첩비야 우여곡절 끝에 북한 현지로 돌아가기나 했으며, 석굴암이 제아무리 논란에 휘말렸던들 그것이 그 자리를 떠난 적은 없다.

그에 견주어 저 지광국사탑은 비록 현지 반환은 결정되었지만, 오늘 시간까지 그것이 실행된 것은 아니며, 무엇보다 현지 반환과 더불어 그것이 서야 할 자리조차 결정하지 못하는 판국이니 이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원형’이라는 말이 나온 김에, 더불어 그것이 어디로 가야 할지를 언젠가는 결정해야 하는 판단의 시점과 맞물려 나는 실체도 없는 ‘원형’이라는 괴물을 퇴출하고 대신 그 자리에다가 ‘핵심 가치’라는 말을 제안하고자 한다. 현재 우리한테 주어진 자료 혹은 역사에 의하건대 저 지광국사를 둘러싼 핵심가치로 나는 부도탑이라는 사실과 더불어 유리걸식 두 가지를 든다.

부도탑이라는 불교승려 산소를 말한다. 승려가 입적해서 다비식을 하고 수습한 사리를 안치한 산소가 부도다. 지광국사탑은 지광국사라는 고려 초기의 저명한 승려의 산소다. 산소는 물론 옮길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저 산소가 일본을 가고 경복궁을 가며, 대전으로 옮긴 일이 실은 유별난 비극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그 과정이 지극히 강압적이고 폭력적이라는 사실에서 우리는 그것을 본래 자리로 돌려야 하는 가장 중대한 근거를 마련한다.


말한다. 우리가 저 지광국사탑을 현지로 돌리려 하는 가장 중대한 이유는 그 쫓겨남이 불법이고 폭력이었기 때문이다. 그 반환은 그에 대한 응분의 보상이며, 배상이다. 지광국사탑은 그럴 자격을 비로소 획득한 것이니, 그 반환은 100년 만의 사면복권이며 부끄러운 과거사 청산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지광국사탑을 현지로 반환한 근거이며, 나아가 이것이 어디로 가야 할지를 결정하는 가장 중대한 준거다. 이에 의한다면 당연히 지광국사탑은 그 자리로 가야 한다. 그 본래의 자리를 이탈한 그 주변 전시관 내부 안치는 사면복권에 대한 무효화이며 과거사 청산의 배반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해서, 그것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저 논리는 인정하면서 현실을 고려해 실내로 들여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3년간 저를 보존처리한 사람들이 주로 그렇다. 저것을 보존처리한 논리가 과학이었기에, 그 과학의 논리를 내세워 야외에 설치하는 일은 방치이며 훼손이라고 주장한다. 산성비라든가 미세먼지, 혹은 새똥 같은 것들이 그 훼손을 가속화하고 말 것이며, 그것은 재앙이라고 주장한다.

내가 사적으로 청취한 저런 견해 중에서는 다른 석조문화재와는 지광국사탑은 현실이 딴판이라, 빗물이 스며들었다가 말랐다가, 얼었다가 녹았다가 하는 일은 치명적일 정도로 석재 상태가 좋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 현실의 논리를 우리는 마냥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데 우리가 우려하는 대목은 또 있다. 저와 같은 논리가 결국은 그와 세트인 탑비를 기어이 뜯어 제끼는 일로 발전했으니, 저 논리가 기어이 먹혀들어 그조차 뜯어서 보존처리하기로 한 것이다. 이와 같은 일은 문화재를 뒷받침하는 여러 학문 분야 중에서도 유독 보존과학이 저와 같은 일에 앞장선다.

저 보존과학은 다른 인접학문과 결합해 우리네 거의 모든 현장을 아시바 투성이로 만드는 일로 발전하고 있다. 문화재 치고 아시바 안 걸친 데가 없고, 석조 문화재 치고 세탁질 하지 않는 데가 없다. 저렇게 매일매일 닦다가 결국 그 문화재는 없어지고 만다. 그네들이 문화재 보존에 기여한 공로를 내가 깎아내리고픈 생각은 없으나, 어쩌면 저들이야말로 문화재를 망치는 주범 아닌가 하는 생각도 지울 길 없다.



나는 매양 문화재를 망치는 주범으로 1. 언론 2. 시민단체 3. 학계를 지목하거니와, 고고학 현장을 망치는 주범은 고고학도들이고, 고건축 문화재를 망치는 주범은 건축학도들이듯, 보존을 업으로 삼는 보존과학 역시 이런 혐의에서 놔주고픈 생각이 없다. 저들이 모두 문화재 보존을 입에 달고 다니지만, 그네들이 손길에 과연 문화재를 보존하는 것인가 훼손하는 것인가를 보면 요즘은 후자 쪽으로 점점 기울어진다.

***

이상은 2021. 5. 28 원주역사박물관이 주최하고 문화유산연구소 길과 문헌과문물이 주관하는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귀환 기념 학술세미나 '還歸本處'에서 행할 내 기조강연 '우리 안의 약탈문화재를 생각한다'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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