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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낙방한 친구를 위로하는 이상국 시 한 편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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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친구야>

"시험을 망쳤어 / 오 집에 가기 싫었어 / 열받아서 오락실에 들어갔어..."
- 한스밴드, "오락실" 중에서


이 노래도 이젠 역사 속에 묻혀버렸다. 하지만 이 노랫가사만큼이나 낙방거자落榜擧子의 마음을 잘 드러내는 표현이 앞으로 또 나올 지는 모르겠다.

신라 원성왕 때 독서삼품과讀書三品科가 시행된 이래, 늦추어 보아도 고려 광종 때 과거科擧를 시행한 이래 이 땅엔 수많은 낙방생과 n수생들이 있었다.

우리의 이규보 선생도 물론 시험에 여러 차례 미끄러졌다. 그가 과거에 급제하기 전이었는지 뒤였는지는 모르겠으나, 고씨 성을 가진 그의 벗이 미역국을 먹고 말았다.

이에 이규보 선생은 (아마도 술을 사주면서) 그를 위로하는 시를 한 수 지어주었다.


시험장에서의 득실은 바둑과 같을지니 / 文場得失正如碁
한 번 실패한들 대승할 날 어이 없으리 / 一敗寧無大勝時
항아가 계수나무 다 주었다 걱정 마오 / 莫訝月娥分桂盡
자네에게 줄 가지 내년에 어찌 빠지리 / 明年那欠贈君枝

- <동국이상국집> 후집 권1, 고율시, "낙방한 고생高生을 위로하다"


요즘 소식이 뜸한 알파고지만, 이세돌 9단과 대국할 때만 해도 어마어마하지 않았던가? 이처럼 바둑이란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법이다. 올해 졌어도 내년에도 지란 법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뜬금없이 계수나무 얘기가 왜 나오느냐면, 옛날에는 과거에 급제하는 일을 달 속의 계수나무 가지를 꺾는 데 비유해 절계折桂라 불렀다. 그래서 과거에 급제한 사람의 명부인 방목榜目을 계적桂籍이라고도 하였다.

그러니 이규보의 시 3, 4구를 풀어보면 "올해는 달에 사는 항아가 널 건너뛰었지만, 내년엔 계지桂枝를 꺾어서 너에게 줄거야! 그러니까 포기하지 마." 정도가 될 게다.

이 시를 받은 고 선생님이 과연 이듬해 급제하셨는지는 알 길이 없다.

백운거사의 기를 받아 분명 하셨으리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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