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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제1차 고려거란전쟁] (9) 죽지 마라 기도하는 성종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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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이 어떤 일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해주海州로 행차한 일이 있다. 이때도 서희가 호종했으니 그에서 성종이 서희가 머무르는 막사로 들어가서 한 잔 빨자 한 일이 있다.

하지만 서희는 한사코 임금을 막아선다.

“신하의 막사는 임금이 머무를 곳이 못됩니다”라는 논리였다.

또 임금이 한 잔 따라 주려 하니 이것도 막는다. 법도에 맞지 않다는 뜻에서다. 이에 할 수 없이 성종은 막사 밖에 앉아 어주御酒를 내오게 하여 함께 마시는 일로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 보아 서희는 확실히 꼰대다. 그냥 넘겨도 될 일도 그리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또 그 무렵에 공빈령供賓令이라는 직책에 있던 정우현鄭又玄이 봉사를 올려 당시 정치에 관한 7가지 일을 논한 일이 있었는데, 임금이 기분 나쁜 내용이 꽤 들어있었던 듯하다.

봉사封事란 간단히 말해 상소문이기는 하지만, 동봉해서 남들이 보지 못하게 하고 임금만 본다 해서 이리 쓴다.

이에 성종은 재상들을 모아놓고는 “정우현이 감히 직분에 넘치게 정사를 논하였으니, 그에게 죄를 주는 것이 어떠한가” 역정을 냈다. 

이로 보아 정우현은 그 직급에 맞지 않은 일을 했다. 봉사를 올릴 자격이 없는데 했다는 것일 수도 있고, 무엇보다 그 내용이 이런 건 폐하가 잘못하고 있으니 이리 해서는 안 됩니다는 내용이 많았던 듯하다.

어잇 이것 봐라? 그래서 치죄하려 했고, 재상들이 임금 눈치를 봐서 유배형 정도를 내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서희가 틀어막는다.  

“옛날에는 간언에 관직이 〈따로〉 없었으니, 직분을 넘은 것이 무슨 죄이겠습니까. 신이 재주도 없이 외람되게 재상의 자리에 앉아 있으니, 말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정우현의 비판은 현재의 병폐에 참으로 잘 부합하는 것이니, 이는 신이 죄를 받아야 하고 정우현에게는 상을 주어야 하는 일입니다.”

요컨대 이런 일은 과감히 장려할 일이지 막으면 언로가 막힌다는 논조였다.

이 일로 정우현은 하루아침에 감찰을 담당하는 검찰총장격인 감찰어사監察御史로 발탁된다.

죽을 때까지 정우현은 서희 말이라면 자다가도 일어났을 것이다.   

그런 그가 이제 일어날 수 없는 병에 걸려 몸져 누었다. 그의 아버지 아들 행태를 보아 그 또한 죽을 때가 되어 아마도 사찰에 들어가서 요양하면서 이제나저제나 날을 기다렸을 터.

이때는 사저에 있을 때가 아닌가 싶은데 그 소식에 성종이 친히 어가御駕를 타고 문병한다.

이는 그만큼 그 신하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적어도 김유신 정도는 되어야 이런 대접을 받는다.

하지만 그라고 용빼는 재주 있겠는가?

그 쾌유를 기원하는 의미로 어의御衣와 말을 사원에 나누어 시주하는 한편, 또 곡식 1,000석碩을 개국사開國寺에 시주한다.

이로 보아 서희가 죽음 직전에는 개국사로 들어가 마지막을 맞이한 듯하다.

그런 그가 사망하자 조정에서는 시호諡號를 창위彰威라 했으니, 위엄을 드높였다는 뜻이다. 각종 부의를 후하게 내렸을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의 아바타인 강감찬이 죽었을 때는 현종은 뭇 신료한테 그의 무덤 매장에 임석하라는 명령을 하달하거니와, 서희한테서는 그런 흔적이 확인되지 않는다.

아마도 그랬을 법한데, 워낙 목종 이전은 문헌이 사라져버린 것이 많아 혹 탈락했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당대를 대표하는 대영웅 서희는 향년 57세로 영원히 잠들었다. 그의 아들 서눌은 아버지 못지 않은 출세가도를 달리고 더구나 왕의 장인까지 되었으니, 고려 전기 서희가 반석에 올려놓은 이 가문은 벌열 중의 벌열이었다.

그가 국가에 헌신한 공로를 생각하면 충분히 그런 대접을 받고도 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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