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문화 이모저모

고려한테 발해는 순망치한脣亡齒寒,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3. 3.
반응형

야울아보기耶律阿保機에 의한 거란의 공식 건국은 916년이요, 발해는 그로부터 딱 10년 뒤인 926년에 거란에 멸망했다. 

거란이 본격 정복국가로 등장하기 이전, 발해 전성시대를 흔히 아래와 같은 지도로 설명하곤 하는데
 

 
 
이 지도는 전반으로 보아 그 중심이야 이론의 여지가 없지마는, 서쪽 변경과 북쪽 변경은 지나치게 비대하게 그렸다.

실상이야 그렇다 치고, 저 신라가 고려로 대체된 다음이 문제인데, 왕건이 쿠데타로 궁예를 타도하고 고려를 건국한 시점은 거란 건국 딱 2년 뒤다. 절도사 시대가 서서히 막을 내려가는 징조임을 이에서도 뚜렷이 볼 수 있거니와, 

고려는 거란이 건국하고, 발해가 멸망하는 918년 이래 926년까지 8년간은 거란과 직접 접촉할 일이 거의 없었다. 물론 그 사이에 사신이 오갔다는 흔적은 있지만 그리 긴박할 수는 없었다.

거란과의 관계에서 고려한테 더욱 중요한 데는 발해였다. 한데 이 발해가 어느날 느닷없이 붕괴한 것이다, 것도 맥도 한 번 제대로 추지 못하고 허망하게 멸망하고 말았다.

이에서 일어나는 가장 중대한 의문. 

거란은 왜 발해를 쓸어버려야 했을까? 단순히 힘 자랑하려고?

천만에. 내 보기에는 처절한 복수극이었다.

발해 정벌에 즈음한 거란 조정 움직임이 요사遼史에서는 긴박하게 전개되는 모습을 뚜렷이 볼 수 있는데, 이 정벌군을 일으키는 야율아보기 근저에는 복수심이 이글거린다. 

발해가 존속한 지난 200년, 거란은 사방에서 쥐어뜯겼다. 당에서 쥐어뜯기고 무엇보다 발해한테도 쥐어뜯겼다. 개중 일부는 발해 영역에 들어가 복종한 삶을 살았을 법한데, 거란이 독립국가로 서기 이전 거란은 시종 발해에 종속된 고난한 삶을 살았다. 

이 복수극 얼티메이텀이 발해 정벌이었다. 

우리는 흔히 고려가 고구려 후손임을 자처하고, 그 땅에서 일어선 발해를 형제 나라가 여겼고, 그런 까닭에 그 멸망 과정에서 쏟아져 들어온 발해 유민을 적극으로 받아들이고, 그 지배층은 고려 지배층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천만에.

국제 관계에 그딴 개소리는 필요없다.

형제나라? 웃기고 있네. 나한테 유리한가 하지 않은가가 있을 뿐이다. 

발해는 전반으로 보아 고려 건국 초기에는 이렇다 할 충돌이 없었고, 관계 역시 나쁠 것도 없었다.

그런 발해가 느닷없이 없어지면서 고려는 거란과 직접 국경을 맞대는 시대로 돌입한 것이다. 

순망치한, 딱 이 상황이었다. 

거란의 팽창을 막는 거대한 보루, 발해가 사라진 것이다. 결국 고려와 거란은 언젠가는 붙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이 충돌을 제어하느냐가 있을 뿐이었다.

전쟁이냐 화평이냐. 

결국 전쟁이라는 파국으로 발전하고 말았지만 그에 이르는 과정, 그리고 그 결과로써 화평이 있었고 왔다는 점을 하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두 왕조는 파국을 맞기 위해 부단히도 에너지를 쏟게 된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