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SSAYS & MISCELLANIES

조건이 결정하는 논문, 강단을 먹여살리는 사이비역사

by taeshik.kim 2023. 6. 30.
반응형

식민성 여부를 떠나 고조선 중심지가 지금의 평양이라는 주장은 적어도 남한 강단역사학계서는 식민지시대 이래 눈꼽만큼도 새로울 순 없어 조선왕조를 이성계 일파가 세웠다는 주장이랑 진배없으니 이런 말을 담은 글은 적어도 논문이라는 형태로 실릴 수는 없다.

한데 이 철 지난 주장을 시종일관 내세우는 글이 논문이라 해서 버젓이, 것도 집중으로 실리는 시대가 불과 5~6년 전에 있었으니 백주대낮 날강도 같은 이런 일은 어찌해서 가능했던가?

당시 동북아역사지도니 해서 이른바 역사왜곡 사태에 즈음해 이른바 사이비역사학 혹은 유사역사학이라는 이름의 이른바 재야사학계 공격에 시달리던 강단사학자들이 저런 주장을 담은 글들을 논문이라는 형태로 집중으로 투고하는 호시절이 있었더랬다.

왜 호시절이라 하는가?

표절이 합법화했고 결론은 이미 정해졌으며 얼개 또한 그 전배前輩가 하던 주장과 하등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골자는 이미 이마니시 류가 짰고 이병도가 얼키설키 다 얽어놨으니 그걸 그대로 따다가 현대감각에 맞게 문구만 다듬으면 됐다.

그네들이 새롭게 보탠 것은 딱 두 가지였다. 해방 이후, 이병도가 보지 못하거나 채 인용하지 못한 고고학 자료 서너 개가 그 하나요, 이렇게 고조선 평양 중심설은 명명백백한데도 니들이 그걸 부당하다고 공격한다는 성토가 그 두 번째였으니

이렇게 두 가지를 적당히 얼버무린 우라까이 표절 논문이 우후죽순으로 특집이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 정부가 등재지라고 공식으로 인정한 잡지에 실렸는가 싶더니, 그것을 토대로 하는 단행본도 더러 선보이기도 했다. 


나무위키 낙랑에서 전재



이들이 고조선 평양중심설을 새롭게 보강했다는 신출 고고자료는 잡다하지만, 유의미한 것은 이른바 낙랑호구 목간 꼴랑 하나였다. 

나아가 강단사학의 반격이라 표현할 만한 저와 같은 주장 혹은 진원지로 역사비평(역비)이 꼽혔다는 점에도 이채로운 대목이 있다.

첫째 이 잡지는 역사전반 사회전반을 다루기도 하나 근간 혹은 본령이라 할 만한 데가 실은 한국근현대사, 특히 한국현대사였으니, 그런 데가 어찌하여 저와 같은 주장을 집중으로 발신하는 고대사 논쟁 진원지가 되었느냐 하는 점이 첫 번째라(나는 이를 역비의 상술이라고 본다.)

역비가 어떤 데인가? 선발 주자인 창작과비평(창비)와 더불어 80~90년대 지식인사회의 이른바 내셔널리즘을 발신하는 양대 진원지 아니었던가?

노골적인 반일 반미주의에 기초하며, 그러면서도 중국과 소련, 그리고 북한에는 시종일관하면서 동조어린 목소리를 발신하며 우리끼리 민족자주 외세배격 주한미군철수를 기치로 내건 극단적 내셔널리즘의 총화 같은 곳이 아닌가?

그런 역비가 저런 특집, 곧 고조선 중심은 평양이다는 케케묵은 주장을 일삼으며, 그것을 부정하는 사람들을 향해서는 광활한 영토와 민족의 영광만을 추앙하는 내셔널리즘의 발현에 지나지 않는다며 공격을 일삼는 토론장을 제공했으니(그렇다고 반론을 준 것 같지도 않다만 이 대목은 내가 기억이 시원치 않다), 내셔널리즘 온실 같은 데서 또 다른 내셔널리즘을 공격하고 나선 대목이 나로서는 실로 의아한 두 번째였다. 

이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첫째, 똑같은 주장을 담은 글이라 해도 조건에 따라 논문이 되기도 한다.

고조선 평양중심설은 적어도 강단에서는 이론이 있을 수 없는 주장인데 그런 골자를 내세운 주장이 고스란히 등재지에 실리고, 그렇게 실은 우라까이 논문은 논문 점수로도 매김을 받았으며, 나아가 이걸로 어느 정도 장사까지 했으니, 이 얼마나 좋았는가?

둘째 강단을 먹여살리는 것은 실은 그들이 그토록 증오하는 사이비역사학 유사역사학이라는 사실이다. 저와 같은 뻔한 주장이 담긴 글을 논문으로 만든 주인공은 누구인가? 말할 것도 없이 재야사학이다. 그네들이 얼마나 고마운가?

더불어 이를 통해 강단사학은 우리 죽지 않았다, 죽기는커녕 이렇게 건재하다고 목소리 높일 기회를 준 것도 재야사학이다. 그들이 있어 우리가 존재가치에 빛을 발하는 것이다. 

앞서 다른 글에서 한 말이지만, 지금 재야사학에서 맹비난한다는 전라도천년사만 해도, 비록 현재 단계에서는 저 공격에 휘말려 출간이 미뤄지긴 한다만, 그리하여 그 전문이 온라인 형태로 공개가 이뤄지기 시작했다만, 저 사태가 아니었던들 누가 독자란 말인가?

독자는 한 사람도 없을 책이 바로 전라도천년사다. 내가 몇 군데 훑어 봤더니 인용할 만한 주장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책에 지나지 않는다. 

저런 책을 나 같이 위대한 사람이 서너 번이나 들춰줬으니, 이 얼마나 성공작인가? 

비아냥으로 들리는가?

나를 존재케 하는 것은 나 아닌 무수한 것들이다. 너가 있어, 너희가 있어, 그가 있고 그들이 있어 내가 있는 것이다. 나의 절대적인 존재 기반은 나 아닌 것들이다. 

강단 역사학을 존재케 하는 절대 기반은 강단이 아닌 사람들이다. 그 강단이 아닌 사람 중에 유독 재야사학이라 지칭하는 사람들이 조금 더 요란스러울 뿐이지만, 저들이야말로 나를 먹여살리는 자양분이다. 

전라도천년사는 자금 재야사학이 먹여 살리는 중이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