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백자를 일러 흔히 순백純白이라 하지만 제대로 살피면 순백은 없어 실은 곰보라 여드름 고민에 시달리는 청소년 얼굴이랑 진배 없다.
예서 살피면의 기준인데 그 어떤 경우건 육안이라 제아무리 순백이라 해도 현미경 들이대면 물광 피부도 살아남지 못한다.
육안과 더불어 또 하나의 조건이 있으니 태양광이다.
태양광에 노출한 조선백자로 순백은 없다. 다 곰보요 얼룩티끌 천지라 그 몰골을 보고선 조선백자를 순백이라 상찬할 수는 없다.
리움미술관 아트숍에 나와 있는 현대작가들 백자다. 우리가 상상속에 그리는 순백 백자는 현대작가에 와서야 비로소 가능해졌다.
저 현대작들은 작가들이 대체 무슨 요행수로 만들었는지 태양광 아래서도 순백으로 뺀질뺀질해서 저 수준은 조선시대 도공이 결코 따를 수 없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이 유전하는 과정에서 스며든 때나 얼룩 때문에 순백인 조선백자가 곰보천지일 수는 있다.
이 달항아리는 원초적 결함을 타고 났거나 혹 후대 저 부분만 거름통이나 오줌통에 한동안 잠겼다 나와서 저 모양인지는 모르겠지만 불량품 아닌가 싶다.
애초 불량품이라면 깨뜨려 버릴 거 집에 가져와서 쌀통이나 할란다 해서 기적으로 살아남지 않았나 모르겠다.
왜 백자가 청화백자가 떴는가?
조명빨 화장빨이다.
저런 도자기가 근대가 개막하면서 실용성을 상실하고는 순전히 미학 혹은 자본의 관점에서 조명받는 시대가 도래했으니 그리하여 방구석에 가야 할 저 친구들이 모조리 박물관 미술관 옥션에 봉안하는 시대를 맞았다.
초기 박물관 미술관이야 자연광을 썼겠지만 그것도 진화를 거듭해 조명이 도자기를 배려하는 가치 역전이 일어났으니 그리하여 그 모든 조명은 전시품에 종속되는 시대를 맞았다.
왜 백자 청화백자인가?
이 인공조명에 최적화했기 때문이다.
조도가 낮을수록 흰색은 홀로 빛난다. 그 조명에 곰보 얼룩은 사라져 버리고 오직 백색 청색의 강렬함만 남는다.
순백이라는 신화는 조명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조선백자 청화백자 신화는 조명빨이요 화장빨이다.
나아가 이 조명빨이 21세기 도자사의 먹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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