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SSAYS & MISCELLANIES

조명빨에 최적화한 백자와 청화백자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4. 23.
반응형

조선백자를 일러 흔히 순백純白이라 하지만 제대로 살피면 순백은 없어 실은 곰보라 여드름 고민에 시달리는 청소년 얼굴이랑 진배 없다.


백색 테러. 너무 빨아들여서 저렇다.



예서 살피면의 기준인데 그 어떤 경우건 육안이라 제아무리 순백이라 해도 현미경 들이대면 물광 피부도 살아남지 못한다.

육안과 더불어 또 하나의 조건이 있으니 태양광이다.

태양광에 노출한 조선백자로 순백은 없다. 다 곰보요 얼룩티끌 천지라 그 몰골을 보고선 조선백자를 순백이라 상찬할 수는 없다.




리움미술관 아트숍에 나와 있는 현대작가들 백자다. 우리가 상상속에 그리는 순백 백자는 현대작가에 와서야 비로소 가능해졌다.

저 현대작들은 작가들이 대체 무슨 요행수로 만들었는지 태양광 아래서도 순백으로 뺀질뺀질해서 저 수준은 조선시대 도공이 결코 따를 수 없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이 유전하는 과정에서 스며든 때나 얼룩 때문에 순백인 조선백자가 곰보천지일 수는 있다.




이 달항아리는 원초적 결함을 타고 났거나 혹 후대 저 부분만 거름통이나 오줌통에 한동안 잠겼다 나와서 저 모양인지는 모르겠지만 불량품 아닌가 싶다.

애초 불량품이라면 깨뜨려 버릴 거 집에 가져와서 쌀통이나 할란다 해서 기적으로 살아남지 않았나 모르겠다.

왜 백자가 청화백자가 떴는가?

조명빨 화장빨이다.


조명빨 순백



저런 도자기가 근대가 개막하면서 실용성을 상실하고는 순전히 미학 혹은 자본의 관점에서 조명받는 시대가 도래했으니 그리하여 방구석에 가야 할 저 친구들이 모조리 박물관 미술관 옥션에 봉안하는 시대를 맞았다.

초기 박물관 미술관이야 자연광을 썼겠지만 그것도 진화를 거듭해 조명이 도자기를 배려하는 가치 역전이 일어났으니 그리하여 그 모든 조명은 전시품에 종속되는 시대를 맞았다.

왜 백자 청화백자인가?




이 인공조명에 최적화했기 때문이다.

조도가 낮을수록 흰색은 홀로 빛난다. 그 조명에 곰보 얼룩은 사라져 버리고 오직 백색 청색의 강렬함만 남는다.

순백이라는 신화는 조명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조선백자 청화백자 신화는 조명빨이요 화장빨이다.

나아가 이 조명빨이 21세기 도자사의 먹거리다.



백색은 모든 빛을 독점한다. 왜 백자인가? 이 한 장면으로 충분하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