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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조선시대 미라

[조선시대 미라-5] 미라는 보존해야 하는가 매장해야 하는가 (1)

by 초야잠필 2019.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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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매스컴 타는 일을 썩 즐기지는 않지만 가끔이라도 조선시대 미라가 언론에 보도되면 거의 항상 반복 재연되는 논의가 있는데, 

 

1) 미라는 이처럼 귀중한 연구 자산인데 제대로 연구도 없이 그냥 묻어버리고 화장하고 있다. 이것은 큰 문제다. 법률을 정비해서라도 제대로 연구할수 있게 체제를 정비해야 한다. 

 

또 하나는, 

 

2) 미라도 사람인데 본인 허락도 없이 이렇게 과학적 연구라는 명분을 앞세워 맘대로 조사해도 되는건가. 연구자들은 죽은 사람의 안식을 방해하지 말라. 

 

산 자와 죽은 자의 만남.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1)번과 같은 입장은 미라가 가지고 있는 학술적 가치를 생각하면 보다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이와 같은 주장은 신문과 방송 뉴스 등지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데, 우리 사회의 무관심을 탓하고 사회의 각성을 요구한다. 미라연구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체계적으로 조사하자는 주장이다. 

 

반면 2)번과 같은 반응은 신문 기사 댓글에서 접할 수 있다. 실제로 미라 기사가 나왔을 때 댓글을 보면 2)번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숫자는 추정하기 나름이겠지만 나는 대체적으로 15-20 프로 내외의 사람은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 개인적으로 판단한다. 이런 주장은 사실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잘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 무의식 속에 깊이 잠복해 있는 생각이라 할 수 있다. 

 

사실 1)번이 되었건 2)번이 되었건 간에 미라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어느 쪽도 스트레스이긴 마찬가지이다. 이 연구를 십 수년간 계속해 오면서 나는 미라 연구가 환호하는 사람과 비난 하는 사람을 담벼락 양쪽에 두고 조심스럽게 담위를 걸어가는 그런 곡예자같다는 생각을 했던 때가 많다. 

 

연구하는 사람으로서는 조용히 작업에 몰두할 상황이 가장 좋은데 미라는 연구 속성상 한번 언론의 화제가 되면 끝장을 볼 때까지 관심이 게속되는 일이 많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지닌 사람들이 번외로 충돌하는 상황도 많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미라 연구에서 볼때 1)번의 입장이 옳은것일까 2)번의 입장이 옳은것일까. 

 

먼저 1)번의 입장을 본다면 미라가 과학적 연구의 대상이 될 때 그로부터 다른 연구를 통해서는 얻기 어려운 귀중한 정보들이 많이 나온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필자가 이 연구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과연 수백년 전 조상님들 시신에 의학적 정보가 남아 있기나 할까. 설사 남아 있다고 해도 어느정도나 남아 있을까. 살아 있는 실험동물로 실험을 해도 항상 어려운게 연구인데 과연 미라로 의학적 연구라는 게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의문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막상 실제 연구를 해보니 내 예상과 전혀 달랐다. 

 

생각보다 미라에는 "의학적 정보"가 훨씬 많이 남아 있었다. 이 때문에 이 전까지는 우리가 도저히 알 수 없던 중요한 정보를 미라 연구를 통해서 알게 된 일도 많았다. 이러한 생각은 필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주변 의학자들도 마찬가지로 이 연구가 가지고 있는 학술적 의의에 대해서는 이제 물음표를 붙여 의문을 표하는 경우는 최근에는 거의 없다. 

 

무엇보다 최근 가끔 외신을 통해 보도되는 인류학적 보도들은 상당수가 미라에서 얻은 연구결과인 경우가 많다. 

 

가장 유명한 예가 5,000년 된 이탈리아의 미라, 외치다. 나중에 한번 이 미라에 대해서는 상세히 다룰 기회가 있겠지만 이 미라가 발견된 후 지금까지 이 단 한 구의 순동기시대 (chalcolithic) 미라에서 얻어낸 과학적 성과물은 엄청나다. 

 

5,000년 된 사람 유해를 뼈로 까지 확장해 보면 이만한 전 세계적으로 드물지 않다. 그럼에도 외치가 지닌 엄청난 학술적 가치는 결국 이 유해가 미라라는 사실에서 온다. 완전히 육탈하여 뼈만 남은 사람 유해와 미라화해서 남은 유해 안에 남아 있는 과학적 가치는 단순 비교가 의미 없을 정도로 큰 것이다. 

 

 

새로 복원되었다는 5,000년 전 이탈리아인(?) 미라 외치. 이전에 복원된 경우보다 더 미남이 된듯.

 

외치 장에서 얻은 시료에서 관찰 된 근육섬유. 외치 장 내용물을 분석하여 이 사람이 죽기 직전 먹었던 마지막 식사의 내용물을 분석해 내었는데 이런 결과는 뼈만 남은 경우 절대로 얻을 수 없다.  

 

 

실제로 유럽의 경우 미라에 대한 연구는 윤리적 문제만 준수되는 한 큰 제한없이 시행되는 상황이다. 필자가 교류하는 유럽의 연구자들의 경우 이 문제에 대해선 크게 문제가 없다. 19세기 초엽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이래 유럽으로 수많은 이집트 미라가 흘러들어갔는데 (좀 오래된 박물관 컬렉션 치고 이집트 미라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이다) 이런 미라는 박물관 수장품의 하나로 관리되고 있으며 필요할 때는 과학자들이 많이들 연구하고 있기도 하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이집트 원정 때 많은 수의 학자 예술가를 대동하여 유럽에 이집트 열풍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조선시대 미라는 외치보다도 어떤 면에서 더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상태이고 당연히 그 학술적 의미도 마찬가지로 거대하므로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조선시대 미라도 당연히 체계적으로 연구되고 박물관 연구소 등에서 보존되는것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아 보인다. 

 

이 때문에 조선시대 미라 연구 종료 후 유족에게 바로 반납하거나 현행법을 따라 화장 처리하여 모시는 경우 아까운 연구자료가 사라진 것으로 안타까와 하는 시각도 많이 접했었다. 물론 이런 시각 자체도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라연구에 관한 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 처럼 연구 종료 후에 앞으로 유지 관리하기만 하면 되는 그런 단순한 문제만은 아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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