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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

조선시대 서북지역을 주목하라

by 신동훈 識 2026.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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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시대 함경도 종성 동관리 유적 풍경이다.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유리건판

 

한 가지 생각을 써 둔다. 

우리나라 18세기 초반까지 향촌 사회에 노비가 바글바글하고 

이 노비사역을 기반으로 양반이 존재한 것은

앞에서도 한 번 썼지만, 기본적으로 이런 모양의 대농장이 노비사역을 바탕으로 발달하게 된 것은

산수의 문제라, 우리나라 남부지역 전역이 비슷한 상황이었을 것으로 본다. 

물론 지역간 차이가 조금씩은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이런 현상은 조선의 시스템이 만든 문제라 시간이 흘러가면 이런 식으로 발달할 수밖에 없어, 

지역간 차이가 별로 없었을 것으로 본다는 말이다. 

간혹 우리나라 호적이 제대로 남아 있는 곳이 한반도 내 일부지역에 국한되어 있어, 

노비가 많은 것은 그 지역 특유의 상황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고 보는데, 

앞에서도 한 번 썼지만 산수계산만 해도 저런 방식으로 될 수밖에 없는 것은 뻔한 일이라, 

우리나라 한반도 중부-남부 지역 일대는 거의 비슷하였으리라 보는 것이다. 

여기서 예외가 있다면 바로 한국의 서북지역-동북지역이 되겠다. 

이 지역은 조선전기, 사민에 더해져 인구가 계속 충원된 지역이라, 

남부지역과는 인구의 구성이 처음부터 차이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한반도 서북지역과 동북지역도 과연 노비 사역을 기반한 양반의 대규모 농장 경영이 주류였겠는가

필자는 아닐 수도 있겠다고 본다. 

한반도 서북지역, 동북지역은 남부지역과 여러모로 달랐으리라 보는데, 

그 가장 큰 이유는 이 지역이 조선전기 사민에 의해 유지되고, 

유력한 사족이 많이 살지 않았던 곳이라는 점-. 

이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뜻이다. 

거듭 쓰지만, 

강력한 유력 사족이 사는 곳에는

노비가 많아진다. 

그 반대라면 노비 숫자가 줄어들 것이다. 

노비사역으로 운영되는 대농장도 줄어들 것이다. 

조선시대 후기가 되면 한반도 서북지역이 여러모로 특이한 지역 징후를 보이는데, 

필자는 그 이유를 조선 전-중기 이 지역에는 유력 사족이 많지 않았기 때문으로 본다. 

유력사족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이 지역은 노비 비율도 남부지역보다 낮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데, 

유감스럽게도 이 지역은 당시 호적이 많지 않으니, 확인할 수는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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