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식[문화부] 2005.07.22 15:34:32
<조선왕실의 마지막 운명과 이구씨의 삶>(3)
그렇다면 이왕(李王)인 이은(李垠)은 도대체 어떤 경로로 친왕(親王)이 되었을까?
그 비밀은 앞서 여러 차례 인용한 왕공가궤범(王公家軌範), 그 중에서도 서훈(敍勳), 즉, 조선의 왕공족에 대한 훈장 제도에 있다. 이 법령 제51조에 의하면 조선의 왕은 만 15세에 달하면 대훈위(大勳位)가 되고 국화대수장(菊花大綬章)이라는 훈장을 받는다. 이런 특권은 일본에서는 천황의 친족인 황족(皇族) 중에서도 오직 친왕(親王)들에게만 적용된다. 그 남편이 이런 훈장을 받아 친왕이 되면 그 부인은 말할 것도 없이 자동적으로 친왕비(親王妃)가 되는 것이다.
고종에 의해 영왕(英王)에 책봉된 이은이 이왕(李王)이 되고,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영친왕(英親王)이라 칭해지고, 그의 비인 이방자가 영친왕비(英親王妃)로 일컬어지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서 말미암는다.
그렇다면 일본 천황가에서 도대체 어떤 사람이 친왕(親王)이 되며, 그 유래는 어디에 있을까?
메이지(明治) 22년(1889) 2월 11일에 발효된 법률로써, 황위(皇位)의 계승 순위 등을 규정한 법률인 황실전범(皇室典範) 제6조와 동 7조에 의하면 친왕은 친왕선하(親王宣下)를 받은 황족 남자를 말한다.
현재는 천황 정비에게서 난 아들(황자<皇子>)과 그런 아들이 정식 아내에게서 낳은 아들(황손<皇孫>) 외에 천황의 형제가 친왕(親王)이 된다.
따라서 이런 일본 황실 전범 규정을 고려할 때 이왕에 대한 친왕 책봉은 특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일본이 조선왕실을 포섭하려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친왕은 현재까지 주어진 자료의 의하는 한 일본사에서 그 역사가 1천년 이상의 장구한 역사를 헤아린다.
정확한 편찬시기는 알 수 없으나 서기 900년 무렵에 편찬된 율령집(법령집)인 영집해(令集解)라는 문헌 중 권 제17은 계사령(繼嗣令)이라 해서 주로 봉작이나 관작의 세습에 대한 규정을 다루고 있다.
이 계사령에서는 "무릇 천황의 형제와 황자(皇子)는 모두 친왕으로 삼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에 의거해 여자 천황을 포함한 모든 천황의 형제는 친왕에 책봉되었고 천황의 자매와 딸은 내친왕(內親王)이 되었다.
따라서 친왕제란 고대 일본의 천황권 강화를 위해 획책된 율령제 하의 분봉 체계 일환이었음을 여실히 알 수 있고, 이미 1천100년 전에 규정된 큰 골격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친왕제는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중국, 특히 당나라 율령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은 고종의 두 아들이요, 순종의 동생들인 영친왕과 의친왕을 지칭하는 '친왕'이라는 칭호야말로 누구도 부인할 수 없고, 의심할 여지가 없는 소위 친일 잔재임을 여실히 알 수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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