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식[문화부] 2005.07.22 15:35:08
<조선왕실의 마지막 운명과 이구씨의 삶>(끝)
그렇다면 최근 타계한 영친왕의 외아들 이구(李玖) 씨는 어떠한 삶의 궤적을 남겼을까?
1931년 12월 29일, 영친왕과 이방자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출생과 동시에 왕세자(王世子)로 '자동' 책봉됐다. 형이 있기는 했으나 생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죽고 없었으므로 그는 이미 태어나는 순간, 그리고 사내임이 확인되는 그 순간에 바로 이왕(李王)의 후계자인 왕세자가 되었던 것이다.
이것을 가능케 한 법적 근거는 앞에서 누차 거론한 왕공가궤범(王公家軌範)이라는 법령 때문이었다. 이 전범 제40조는 왕공족(王公族)을 여러 단계로 분류하고 있는데 그것을 순서대로 보면 ▲ 왕 ▲ 왕비 ▲ 태왕(太王. 은퇴한 왕의 아버지) ▲ 태왕비(太王妃) ▲ 왕세자(王世子) ▲ 왕세자비(王世子妃) ▲ 왕세손(王世孫) ▲ 왕세손비(王世孫妃) ▲ 공(公) ▲ 공비(公妃)였다.
하지만 이구 씨는 왕이 되지 못했다. 1945년 일본의 패망 때까지 줄곧 아버지 영친왕이 이왕(李王)으로 재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기간 동안, 즉, 1931년 출생 이후 1945년 8월까지 이구 씨는 줄곧 다음 이씨 조선왕조 대통을 이어받을 왕세자였다.
그렇다면 그의 왕세자 신분은 1945년 8월 15일과 함께 끝이 났을까? 성급한 판단이다. 이구 씨가 왕세자 지위에서 공식적으로 박탈된 것은 1947년 5월 3일이었다.
이날 일본국 헌법이 발효되었다. 이 일본국 헌법은 천황의 일족인 황족 외에 어떠한 귀족(貴族) 신분도 인정하지 아니한다고 했기 때문에 이구씨는 이에 의해 왕족 신분을 상실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국적은 어떻게 되었을까?
조국이 해방이 된 직후에도 한동안 그는 일본 국적을 유지했다. 그리고 그는 결코 일본 국적을 자발적으로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일본 국적은 1952년 4월 28일에 자동 상실되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날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이 발효됐다. 이에 의해 일본은 조선에 대한 모든 권리 주장을 포기했다. 종래 일본 신민(국민)으로 포섭했던 조선인들에 대한 국적도 자동 포기해야 했다.
이 샌프란시스코조약 발효와 함께 왕세자였던 이구 씨는 한국 국적을 취득했던 것이다.
그의 삶과 임종이 없던 그의 죽음을 일컬어 개인적으로도, 또 한국 민족사도 비극과 비운이 점철되었다는 말들이 별다른 의심이 없이 통용되고 있다. 그의 할아버지(고종)가 강제로 황제 자리에서 퇴위되었고, 그래서 순종에 이어 다음 황제가 될 수 있었을 그의 아버지(영친왕) 또한 이왕(李王), 혹은 친왕(親王)에 그쳤으며, 더구나 왕은 왕이되 실권이 없는 왕이었다는 점에서, 나아가 그 자신 또한 허울뿐인 왕실의 왕세자였다는 점에서는 비극 혹은 비운이라는 말이 통용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또 하나 부인할 수 없는 대목은 비록 그의 조국은 망했어도, 그의 가문은 여전히 1945년 8월 15일까지 존속했으며, 그런 체제가 부여한 각종 특혜를 누렸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같은 시대를 산 어떤 조선인보다 적어도 1945년 이전 그의 생활은 특권에 노출되어 있었던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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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실의 마지막> (3) 천황의 형제 아들로 대우받은 영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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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실이 식민지시대에 핍박받았다는 신화는 그것을 뒷받침한 근거가 수십 수백 가지지만, 무엇보다 영친왕 이은의 미망인 이방자 회고록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회고록은 시종 억압과 감시로 점철한 삶을 살았다는 신화를 구축했다. 하지만 우리가 잊은 점이 있다. 그가 말하는 억압과 감시는 이왕가에 대한 각종 특혜가 해체된 해방 이후의 기억에 근거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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