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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勾高麗之所有也, 其古碑遺跡, 尙有存焉
이렇게 되어 있으니, 고려사 기록을 보면, 이때도 비 자체의 존재는 알고 있었다.
그러면 세종은 왜 윤관비를 두만강 너머에서 찾고 있었을까?
이 비를 고구려 비로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신라비라고는 감히 짐작도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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