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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사민徙民... 농업국가의 영토개척법

by 초야잠필 2022.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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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는 만주를 상실했다는 선입견 때문에 그렇지 사실 지속적인 영토확장의 역사이기도 했다.

신라--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영토는 계속 북으로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농업국가이다. 이 때문에 영토가 확장된다는 것은 곧 徙民의 역사이기도 했다.

문제는 徙民을 한다고 해서 끝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아무 연고도 없는 땅으로 이식된 사람들이 제대로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이들을 지켜낼수 있는 군병력의 지원이 필수적이었다.

따라서 고려 조선시대 영토의 확장은 필연적으로 농민과 군병력을 동시에 전진시키는 병진정책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할수 있다.

조선시대 사민정책을 보면, 눈물겨운 부분이 있다. 새로 영토로 추가된 압록강 두만강 일대의 땅을 지키기 위해 삼남 지방에서 농민들이 대거 이주하였다.

세종대에는 한번 사민을 하면 몇천 호 단위로 이주시켰다. 그리고 그 땅을 지키는 병력을 함께 주둔시켰으니 국가적인 차원에서 보면 엄청난 재정을 소모하는 일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조선시대 사민 정책은 조선중엽까지도 매우 불안정한 것이었다. 중종대에 평안도 지역에 대규모 여역이 발생했는데 이때 조정에서 걱정한 것 중 하나는 여역이 치성하여 사람들이 도주하거나 죽어 숫자가 줄게 되면 여진이 그 틈을 타 내려온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그 여역이 치성한 중에도 왕조는 새로운 사민을 선발하여 계속 올려보내는 시도를 했다. 가히 죽음의 행군이라 할 만한 것이지만, 그만큼 조선시대에 한치의 땅이라도 지키고자 하는 욕망이 강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우리는 신라와 고려, 조선의 북방으로의 영토확장을 단순히 행정구역의 설치, 군사적 원정의 결과만으로 보지만, 실제로 북방 영토확장의 본질은 사민이다.

사민 없이는 절대로 농업국가의 영토확장은 성공할수 없는 것이다.

수책거적도. 녹둔도를 습격한 여진족과 이를 방어하는 조선군. 이들 뒤에는 농사꾼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서있다. 농사를 정상적으로 짓기 위해서는 정치군사적 안정이 필수적이었음을 잘 보여주는 그림이다.



*** 편집자주 ***


조선전기 무자비한 북방사민을 두고 그 처참함을 읊은 시가 강희맹인지 강희안인지한테 있다.

나중에 찾아 전문을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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