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本勾高麗之所有也, 其古碑遺跡, 尙有存焉
이렇게 되어 있으니, 고려사 기록을 보면, 이때도 비 자체의 존재는 알고 있었다.
그러면 세종은 왜 윤관비를 두만강 너머에서 찾고 있었을까?
이 비를 고구려 비로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신라비라고는 감히 짐작도 못했을 것이다.

반응형
'노년의 연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한국 고대사의 기록이 빈약하게 된 것은 (1) | 2022.12.25 |
|---|---|
| 구스노키 마사시게 楠木正成 (1294~1336)와 칠생보국七生報國 (1) | 2022.12.25 |
| 고려사에 나오는 진흥왕 순수비 (0) | 2022.12.23 |
| 한국사가 특필해야 할 정안국定安國 (0) | 2022.12.22 |
| 진흥왕대 국경선 (0) | 2022.12.2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