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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에 제대로 된 역사서 한권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으로 본다.
이때 뭐라도 나왔으면 이름이라도 남아 있어야 하고,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쓸 때쯤 뭐라고 그 편린이라도 남아 있어야 하는데, 삼국사기를 쓸때 김부식 앞에는
통일신라시대에 제대로 편찬된 관찬서 하나 놓여 있지 않았다는 게 필자 생각이다.
통일신라시대와 같은 시기, 일본에는 소위 6국사가 편찬되었는데 이 시기 편찬된 사서 권수는 무려 190권에 달한다.

삼국시대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통일신라 기록은 뭐라도 있어야 할 것 아니겠는가?
이 시기 기록은 내가 보기엔 관찬사서가 있었는데 태워먹은 게 아니라 편찬을 아예 안 한 것이다.
한국 고대사 문헌의 빈약함을 김부식에게 뒤집어 씌우는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든 한글자라도 더 남겨보려고 애쓴 그의 입장에서 본다면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통일신라 시대에는 삼국사기에 그 편린을 남긴 사찬 기록들 빼고는 관찬 사서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고 본다.
물론 이 시기에 편찬은 했는데 이름도 전해지지 않고 몽땅 다 탔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삼대목도 이름만이라도 전해져 오는 걸 보면 이 시대 관찬 사서는 태워먹은 게 아니라 아예 편찬을 안 한 것이 맞겠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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