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無可死之義 但國家養士五百年 國亡之日 無一人死難者 寧不痛哉? 吾上不負皇天秉彝之懿, 下不負平日所讀之書. 冥然長寢, 良覺痛快. 汝曹勿過悲
나는 죽어야 할 의리가 없다. 다만 국가에서 선비를 기른지 5백 년이 되었는데, 나라가 망하는 날에 한 사람도 국난에 죽는 자가 없다면 어찌 통탄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내가 위로는 하늘로부터 타고난 양심을 저버리지 않고, 아래로는 평소에 읽은 글을 저버리지 않으며 영원히 잠들어 버린다면 참으로 통쾌함을 느끼리라. 그러니 너희들은 너무 슬퍼하지 마라.
경술국치 당시 황현이 자결하면서 남긴 유서의 내용이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吾無可死之義 但國家養士五百年 國亡之日 無一人死難者 寧不痛哉? [나는 죽어야 할 의리가 없다. 다만 국가에서 선비를 기른지 5백 년이 되었는데, 나라가 망하는 날에 한 사람도 국난에 죽는 자가 없다면 어찌 통탄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라 한 부분이다.
황현은 사마시에 합격했지만 대과는 보지 않아 벼슬길에 나서지 않은 사람이다.
따라서 유교의 입장에서 보자면, 吾無可死之義 인 것이다.
녹을 먹지 않았으므로 자신은 나라가 망했을 때 같이 죽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나라가 5백년을 선비를 키웠는데 나라가 망하는 날 같이 죽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야 어찌 애통하지 않겠는가? 하였다.
황현의 이야기가 옳다.
황현은 죽을 필요가 없었다.
사마시 급제자 정도로 녹사도 하지 않은 그로서는 망국 때 순사할 의무는 당연히 없는 것이다.
사실 이때 죽어야 했던 사람들은 당시 녹을 먹던 사람들이다.
훌륭한 선비를 많이 배출한 조선의 유교가
지금 사회적으로도 별로 대단한 존경을 못받고 때로는 위선의 표상처럼 매도당하기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조선이 망할 당시 황현 같이 안 죽어도 되는 양반들은 죽은 반면,
경술국치 당시 조선의 벼슬아치들이 새 왕조라 할 일본의 관작을 훌러덩 받았다는 데 있다.
이건 유교적 입장에서 볼 때 도저히 설명 불가능한 것으로
나중 일제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이 출사하는 것과는 또 다른 것이다.
유교에서 보자면,
일제시대에 태어나 출사한 사람들은
청나라 때 출사한 한족 관료와 별 차이가 없다.
이전 왕조와 인연이 없으니 순사殉死의 의무가 없는 것이다.
유교에서 본 속성이 그렇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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