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중심이기는 하지만, 흔히 그네가 나이 들어가는 증상으로 꽃에 혹닉하며, 드라마를 보기 시작하는 현상을 들거니와, 그래 결과로만 보면 나 역시 그런 세대라 저에서 한 치 어긋남이 없으니 맞는 말인갑다 절감한다.
그래 꽃이 좋아라 희희낙락하는 사람들을 보며 얼이 빠졌다 핀잔한 때가 있기는 했으니, 과히 틀린 말은 아니로대, 그렇다 해서 그런 꽃에 무심했는가 하면, 꼭 그런 것은 아닌 듯하니, 지금보다 젊은 시절에도 꽃이 좋기는 했다. 다만 표시를 안 내거나 덜 냈을 뿐이다.
물론 나이 들어가면 살아온 날보다 살 날이 적어지는 조금함도 없지는 않겠으며, 그런 조급함에서 어쩌면 힘찬 탄생을 알리는 그런 화려찬란이 더 대비되어 상실의 두려움에 대한 보복심리가 일정하게 작동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이 얘기를 꺼낸 까닭은 결국은 드라마 상찬론을 펼치기 위함이라, 난 드라마 거의 안 봤다. 요새도 그에 혹닉하는 수준은 아니라서, 넷플릭스인가 뭐시긴가 하는 그런 드라마 영화 잔뜩 틀어주는 번호도 없어, 공중파나 케이블채널에서 방영하는 이른바 소문난 드라마 몇 편 골라보는 수준에 지나지 아니한다.
이 드라마라는 것도 나는 일 때문에 보기 시작했으니, 해직 생활 청산하고 문화부장으로 발령나서 그쪽에 2년간 일하면서, 문화부장으로서 화제의 드라마 정도는 아니 볼 수 없어 몇 편 시도했다가 오잉? 이런 세계도 있네 해서 나의 아저씨 이래 근자 재벌집 막내아들과 대행사에 이르기까지 몇 편을 골라본 데 지나지 않는다.
나는 영화 역시 즐기는 편은 아니라서, 극장 가는 일이 드물고, 그나마 즐기는 영화라는 것도 케이블 채널에서 주구장창 틀어주는 그런 영화 뿐이다.
물론 그렇다고 아예 곡기 끊은 사람처럼 드라마를 보지 않았느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니어서, 젊은 시절에도 각종 화제가 된다는 드라마는 봤다. 요새 케이블채널이 무슨 복고바람이 불었는지, 내가 젊은 시절에 한창 유행한 드라마들을 왕창왕창 방영하는 중이라, 그런 드라마 지나치면서 과거를 잠깐 반추해 보곤 한다.
늙어서 드라마가 좋아졌는가? 아니다. 한국 드라마 수준이 높아져서라고 나는 본다.
내가 근자 혹닉한 드라마 몇 편을 보면서 나는 각 회당 각 장면마다 무릎을 치곤 하는데, 대사는 어찌 그리 하나하나 주옥과도 같아 그 모든 드라마 대사가 셰익스피어를 능가하고, 영상미는 또 왜 그리 뛰어난지, 그 어떤 명화의 그것보다 월등하더라. 대사도 그렇고 영상 어디에도 이른바 국제기준으로 봐도 한국드라마가 세계 최고더라.
이 정도 수준은 이른바 미드 정도밖에 없는데, 미드랑 한국드라마가 다른 지점은 폐부를 찌른 대사다. 인간 심성 폐부를 찌르는 말이 왜 그리 많은지, 이걸 보고서는 글쟁이 시대는 이제 드라마로 갔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드라마 대사들로 나는 어쩌면 한국드라마가 노벨문학상을 받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요컨대 남자가 중년에 들어서며 드라마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한국드라마 자체가 질적 양적으로 급성장해서 그들의 심성을 파고들기 때문이라고 나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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