冬至(동지)ㅅ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여
春風(춘풍)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청풍 이불안에 서리서리 넣었다가
얼온(사랑하는) 님 오신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임을 그리워 마음을 절절하게 읊은 조선시대 최고의 예인, 황진이 시조다.
사랑하는 임 없이 독수공방 해야 하는 기나긴 동짓달 밤 시간을 잘라 두었다가
임을 만나는 날, 그 시간들을 이어붙여 더 오래오래 같이 있고 싶다는 애절하고, 깜찍한(?) 마음이 담겼다.
고등학교 문학시간에 이 시조를 배우고 "아! 어쩜 이 언니는 이리 여자 마음을 잘 알까!" 하고 감탄한 기억이 있다.
한 번쯤은 경험이 있으이라 생각한다. 같은 시간인데, 좋아하는 사람과 있으면 그 시간이 어찌나 순식간에 지나가는지!!
"콩콩콩콩. 황진아, 동짓달만 밤이 그리 길더냐. 계수나무 아래 홀로 방아 찧는 나는 매일 밤이 동짓달밤이로구나."
〈벼루 속 토끼의 노동력 착취 현장〉
보름달이 뜬 계수나무 아래에서 외로이 불로장생 약을 만든다. 보름달을 형상화한 윗부분 동그란 구멍은 먹을 갈 때 사용하는 물을 담아두거나 먹물을 담아두는 용도다.
토끼 표정이 어쩐지 좀 화나 보인다. 우리가 보지 않을 때 왠지 절구공이를 내팽겨칠 것 같다. "에잇, 못해먹겠다!"
황진이 언니가 '동지'를 괜히 '기나긴 밤' 이라고 표현한 게 아니다.
실제 동지에는 북반구에서 태양의 남중고도가 가장 낮아 1년 중 밤이 가장 긴 날에 해당한다.
밤이 가장 긴 날로, 음의 기운이 높아 민가에서는 이를 상쇄하기 위해 양의 기운이 가득한 붉은 팥죽을 쑤어 나눠 먹었다.
팥죽을 쑤면 먼저 사당에 올려 동지고사를 지낸 다음 집안 곳곳에 놓았다가 식으면 나눠 먹었다. 팥의 붉은색이 나쁜 기운을 막아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기나긴 밤, 황진이 언니는 무얼하며 밤을 보냈을까.
요즘처럼 핸드폰으로 유튜브 동영상을 보며 시간을 보낼 수도 없고.
잡 생각이 나지 않게 다른 곳에 집중하고자 한땀한땀 수를 놓았을까?
기나긴 밤을 수놓을 자수틀
수 놓을 천의 바탕이 팽팽하게 펴지도록 가장자리를 잡아당겨주는 틀이다. 사용자 앉은키에 따라 높낮이를 조절하도록 다리가 분리된다는 점이 이 자수틀 포인트다. 섬세한 자수 작업을 효율적으로 하도록 기능적인 용도를 강조했다.
누군가 나에게 "동지는 바꿔말하면 따뜻한 날의 시작을 의미한다."고 말해 준 기억이 있다.
더이상 어두울 수 없는 가장 어두운 곳 절정을 찍었다면 이제 밝아오는 일만 남았다. 어두움의 절정은 밝은 곳으로의 첫 걸을음 내딛는거와도 같은 의미다. 또한 가장 밝은 부분의 정점을 찍었다면 조금씩 어두워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점점점 어두웠다 점점점 밝아지고, 다시 점점점 어두워지고. 반복의 연속이다.
산다는 것 또한 이와 같지 않을까.
항상 좋을 수만, 항상 안좋을 수만은 없다는게 보통 평범한 순리 아니일까.
어우, 동지 이야기하다 이게 무슨 오버람.
12월 22일 다가오는 동지, 나는 보통 평범하게 팥을 품은 붕어빵을 먹을 것이다. 냠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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