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2전시실인 '한국인의 생업실'을 보고있자면 정겹다.
매우 옛날 사람(?)이 아니기에 모두 보던 물건은 아니지만, 어린시절 동네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사용하던걸 봤기에 낯설지 않다.
그 중 '지게'가 좋다.
지게의 길이며, 크기이며, 등태(등이 닿는 부분으로 짚으로 퉁퉁하게 엮어 만든다)의 위치이며, 어깨끈의 길이며, 하다못해 지겟작대기의 길이이며 어느 하나 지게를 메는 이를 고려하지 않은 부분이 없다.
모든 물건이 그렇고, 더욱 일상에서 먹고사는 데 필요한 물건이기에 사용하는 이가 불편하지 않게 참 인체공학적(?)으로 만들었다.
박물관 2전시실에 전시어 있는 '바지게'
20세기 143.5×61.5 소나무·싸릿대·짚
'바지게'는 많은 양의 짐을 싣기 위해 싸리나 대오리로 둥넓적하게 엮어 만든 바소거리를 얹은 지게이다.
'바소거리'는 지역에 따라 '바소고리' 또는 '발채', '걸채' 라고도 불리며 싸리를 촘촘하게 부챗살 모양으로 두 장을 겹쳐 엮는데, 밑은 붙어 있고 위는 따로 있어 가운데를 접거나 펼칠 수 있게 만들었다. 또한 지게를 질 때 흙이 떨어지지 않도록 안쪽에는 거적을 대어 사용하기도 하였다.
어린시절 기억으로는 저 바소거리가 꽤 무거웠던 기억이 있다. 위에서는 부챗살이라고 적었지만 나는 만화 속 인어공주가 앉아있는 조개 같다 생각했다. 그래서 굳이 저 바소거리를 꾸역 꾸역 벌려 안에 앉아 인어공주인척 했던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덧붙이어 지게가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때까지 북면에 살았다.
지명 참 뻣뻣하다. 북쪽에 있어 북면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충남 천안시 북면 전곡리'에 살았다.
전곡리 마을회관에서도 한참을 걸어 올라 산 중턱에 살았다. 동네사람들은 우리집을 '덤바위골'이라고 불렀다.
아무래도 집 주변 산에 바위가 많았나보다.
학교 마치고 집에 걸어가면 마을회관에 모여있던 할머니들이 나랑 동생을 보고 늘 하던 말이 있었다.
"덤바위골 아가들 올라가네~~"
"아이고 언제 그까지 올라가누, 하드 먹고가라~~할머니네 부엌가서 냉장고 열면 하드 있다. 그거 꺼내 먹으면서 가라~~"
"네~~~~"
하고 동생이랑 자연스럽게 아무도 없는 윤씨할머니, 미라할머니 집 대문을 열고 부엌에 들어가 하드를 꺼내 먹으며 집에 걸어갔다.
그런데, 덤바위골인 우리집보다 더 산골에 사는 집이있다.
염소할아버지댁이다.
동네사람들이 염소할아버지라 하기에 나도 동생도 그렇게 불렀다.
사실 할아버지댁에 가보면 염소는 몇 마리 없었는데, 어른들 말로는 예전에는 많이 키우셨다고 한다.
염소할아버지한테 죄송하지만, 그 말을 듣기 전까지 나와 동생은 염소를 닮아서 별명이 염소할아버지일거라고 생각했었다.
염소할아버지는 머리가 백발이고, 허리도 구부정 하고, 체구도 아주 작으셨다.
그런데 어찌 그리 힘이 좋으신건지, 당신 체구보다 몇 배나 되는 것을 지게에 지고 걸어 올라가셨다.
등태
지게를 질 때, 등이 닿는 부분에 짚으로 퉁퉁하게 엮어서 대었다. 지게의 딱딱하고 거친 부분이 등에 직접 닿아 쓸려 다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짚방석같이 두툼하게 만들어 지게를 질때 등에 끼어 사용하기도 했는데, 지게 초자들은 등태가 자꾸 흘러내려 등이 쓸리곤 했었다.
등태를 이은 새장에 어깨끈(멜끈)도 같이 이었다. 지게 몸의 맨 아랫부분인 목발(‘동발’이라고도 함)에 멜끈의 아랫도리가 걸리도록 턱을 쳐놓았다.
새장
위 이미지로는 등태에 가려 새장이 잘 보이지 않지만, 지게의 두 짝이 서로 짜여 있도록 가로질러 박은 나무를 말한다. 지게에는 보통 4~5개의 새장이 있다. 맨 위의 새장을 ‘윗새장’ 또는 ‘까막새장’이라고 하며, 윗새장 바로 아래를 ‘밀삐새장’이라 한다. (*밀삐-짚으로 엮은 끈) 가운데 있는 새장은 ‘허리새장’으로 등태를 받쳐 준다.
지겟작대기에 의지에 서 있는 바지개
지게를 세울 때 버텨 놓는 끝이 'Y'자 모양으로된 작대기이다. 지게를 지고 비탈길을 내려올 때 지팡이로도 쓰며 풀섶을 헤쳐 나갈 때 이것으로 길을 트기도 한다.
동생이랑 집 앞 언덕에서 놀고 있으면, 염소할아버지가 올라오는게 보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처음에는 할아버지가 아니라 나뭇가지며 갈비며 옥수수껍질이며 산만한 지게에 쌓인 더미가 보였다.
할아버지가 조금씩 조금씩 언덕을 올라올 때마다 할아버지 흰 머리가 보였고, 작대기를 짚은 손이 보였고, 할아버지 고무신이 보였다.
뒤돌아 올라가는 할아버지 모습은 발없는 지게귀신 같았다.
지게에 하도 짐이 많아, 할아버지는 가려 안보이고 지게만 둥둥 떠서 올라가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신기하기도하고, 재밌기도해서 염소할아버지가 지게를 지고 올라갈 때 마다 뒤에서 지게끈을 잡아당기거나 지게에 있는 나뭇가지들을 빼며 장난쳤었다.
어느날, 내가 너무 세게 잡아 당겼는지 염소할아버지가 뒤로 발라당 넘어지셨다.
"할아버지 괜찮아요???? 괜찮아요??? ㅠㅠ"
"아이구구구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는 염소할아버지 대답을 듣자마자 그대로 냅다 달려 집으로 도망갔다.
나때문에 할아버지가 다치신건 아닌지, 돌아가시는건(?) 아닌지 뭔가 이래저래 복잡하고 놀란 마음이었다.
그 일이 있은 뒤로 나는 무슨 마음인지, 염소할아버지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언덕 밑 저만치서 염소할아버지가 지게를 지고 올라오는게 보이면 집으로 달려가 숨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우리집을 지나 올라갈 때까지 조용히 숨어서 지켜보았다.
할아버지를 다치게했다는 죄송스러운 마음, 도움을 드리지 않고 그대로 도망간거에 대한 죄책감, 다시 저렇게 커다란 지게를 지고 다닌다는 거에 대한 안도감 등등 복잡한 감정들이 쇠똥구리 덩이처럼 커져 염소할아버지 앞에서 숨게 만들었다.
그 뒤로 어떻게 다시 염소할아버지한테 인사를 했는지, 아무렇지 않게 지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게를 보면 어렸을적 염소할아버지가 떠오른다.
당신 몸모다 훨씬 큰 덩치를 어깨에 이고, 느릿 느릿 지겟작대기에 의지해 묵묵히 언덕을 올라가던 염소할아버지가 떠오른다.
*출처
『한국농기구고』, 김광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1986
『자연의 도구』, 온양민속박물관,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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