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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송은의 온양민속박물관 이야기

멧돼지와 옥비녀 이야기-최종회

여송은 온양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온양이아버지가 부러뜨린 옥비녀를 멧돼지 굴 앞에 두고 내려온지 열나흘이 지났습니다.

온양이의 병세는 좋아지기는 커녕 더욱 나빠졌습니다.

 

 

 

"온양이아버지, 우리 온양이 왜 이럴까요. 약방 선생님 말대로라면 우리 온양이 병세가 지금즘은 좋아져야할텐데... 좋아지기는 커녕 더 안좋아졌어요. 이러다 우리 온양이 정말 잘못되면 어떡해요..."

 

 

"아니, 뭐 그리 재수없는 소릴 하오!! 기다려 보시오. 내 분명 두고는 왔소."

 

 

"...네? 두고는 왔다니 무슨 말씀이세요?? 옥비녀 그대로 두고온거 맞으시죠? 혹시 옥비녀 아까워서 나무비녀 앞에 두고 오고 그런건 아니시죠??"

 

 

"아니 나무비녀라니!!!! 사람을 뭘로 보고!!! 옥비녀 두고 왔소!! 비록 반짜리지만!!!"

 

 

"......반????"

 

 

"아차차....."

 

 

"반?? 지금 우리 온양이보다 옥비녀인거에요??? 당신이 그러고도 아비에요??!!"

 

 

"아..아니 그게 아니라.. 반이어도 옥비녀는 옥비녀 잖소..!"

 

 

"귀신은 이런인간 안잡아가고 뭐하나 몰라 정말~~~~!!! 아니 뭐 말같지도 않은 소릴하는거에요! 부러뜨린 나머지 옥비녀 어디있어요?? 당장 내요!!"

 

 

"내...그 책함 안쪽에..."

 

 

책궤  19세기  오동나무

 

여러 권의 책을 보관하던 궤로 ‘책상冊箱’, ‘책함冊函’이라고도 한다. 연귀짜임으로 결구하고 아름다운 나뭇결을 살렸으며 종이에 벌레가 생기지 않도록 오동나무 판재로 제작하였다. 문판에는 휘어짐을 방지하는 변자를 따로 대지 않고, 율각형栗角形 손잡이를 붙였다. 문판에 ‘家禮增解가례증해’, ‘禮記예기’라고 음각하여 보관하던 책을 유추할 수 있다.

 

여담이지만 오동나무는 가볍고 방습과 방충에 강하므로 장·상자·악기류를 제작 할 때 많이 사용되었다. 따라서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딸을 낳으면 뜰안에 오동나무를 심어 결혼할 때 장을 만들어 주었다.

 

 

 

 

"어흐 속터져!!! 또 그걸 숨겨놨어요?? 저 나갔다 올게요!!"

 

 

"아니 이밤에 어디가려고 하시오!"

 

 

"제가 어딜 가겠어요! 당신이 부러뜨린 반쪽자리 비녀 찾으러 가지요!!"

 

 

 

끼익 쾅!!

 

 

 

 

칠흑 같은 밤, 달이 구름에 걸리어 있다.

 

 

 

조족등  19세기  한지, 댓개비, 옻칠

밤길에 발밑을 비추기 위해 들어 '조족등燈'이라고 하였으며 생긴 모양이 '박'같이 생겼다하여 '박등'이라고도 하였다. 또한 관청에서 순라군巡邏軍이 야간순찰을 돌 때 사용하기도 하였다.

 

대오리를 가늘게 깎아 골격을 만들고 종이를 두껍게 여러 겹 발라 만들었다. 또한 손잡이와 몸체가 결합된 자루 주위에 작은 환기구멍을 뚫었다. 내부에는 시우쇠로 받침대를 설치해 초를 꽂을 수 있도록 하였다. 밤길에 도적을 방지하기 위한 등이어서 ‘조적등照賊燈’이라고도 불렀다.

 

 

 

 

자식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큰소리 치고 집을 나섰지만, 여자 혼자 어두운 산길을 등 하나에 의지해 간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이따금씩 이름모를 동물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괜찮다 주문을 외우듯 은장도를 꼭 웅켜 쥐었습니다.

 

 

 

 

은장도노리개  19세기  은

 

칼집을 갖춘 휴대용 칼로 남녀 구분 없이 사용하였다. 실용성을 겸비한 장신구로 남성은 허리띠나 옷고름에, 여성은 치마 속이나 노리개에 달아 지니고 다녔다. 

 

위 유물은 여성이 사용하였던 노리개에 달린 은장도로 이미지로는 보이지 않지만 은장도 상단 부터 차례로 상서로운 동물을 상징하는 원숭이, 학, 사슴 등을 새겨 넣었다. 세 갈래로 매듭지은 술을 달아 길게 늘여뜨렸고 장식 매듭으로 마무리하여 은장도에 연결하였다. 은장도에 새겨진 문양과 풍성하고 섬세한 노리개의 술과 매듭으로 보아 양반집 여성들이 사용하였을 법하다.

 

 

 

 

 

 "멧돼지 굴이 어느 쪽이었다고 했지? 가뜩이나 밤에 눈이 어두운데, 산길이니 더 안보이네..."

 

"음? 저기 노란색깔은 뭐지? 유황인가? 우리 온양이 병이 좋아지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 일단 주워보자..."

 

 

 

노란 물체 주섬주섬 주으며 따라 가니 멧돼지 굴 앞에 다다랐습니다.

 

굴 앞에는 옥비녀 반조각 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습니다.

 

어미 멧돼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온양이엄마는 얼른 반자리 옥비녀를 챙겨 들고 단숨에 산을 내려왔습니다.

 

어미 멧돼지를 마주치면 안된다는 생각에 허겁지겁 산을 내려와 어떻게 산을 내려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습니다.

 

 

 

마을 어귀에 다다르니 어스름하게 동이 트기 시작했습니다.

 

온양이엄마는 두 동강이 난 옥비녀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왠지 저번 저잣거리 약방에 가면 뭔가 방도를 알려줄 것 같아 그리로 향했습니다.  

 

 

 

 

"......저...계세요? 선생님 계세..."

 

 

"어!!!! 거기서 들어오지 마시오!! 잠깐 거기 계시오!"

 

 

"아 네네."

 

 

 

한참 뒤

 

 

"내 잠시 여기 앉아 도를 닦는 중이었소."

 

 

"아 네. 제가 그런줄도 모르고 방해했네요. 죄송합니다. 그런데 모양이 참 희한하네요."

 

 

"겉모습은 겉모습일 뿐, 본질이 중요하지요."

 

 

 

  

 

 

치질 치료기  20세기  질흙

 

치질 환자를 치료하는 도구이다. 윗부분의 작은 구멍에 쑥을 넣고, 아랫부분의 구멍에 숯불을 넣은 후 불을 피워 환부에 쑥뜸을 뜨는 기구이다.

 

 

 

 

"그런데, 어찌 표징이 썩 좋지 않으오. 내가 알려준 방도대로 했다면 지금쯤 싱글벙글 웃으면서 선생님 덕분이라고 요란요란을 떨어야 맞을텐데 말이오."

 

 

"아...그게...."

 

 

 

온양이 엄마는 면목없다는 듯이 주섬주섬 두 동강이 난 옥비녀를 꺼내보였습니다.

 

 

"하 정말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구려. 자식의 목숨줄 앞에서도 머리 굴려 옥비녀를 두 동강을 낸걸 보면... 난 이제 모르겠소. 바쁘니깐 그만 가보오."

 

 

"선생님 제발요.... 저희 아이 아빠가 잠시 미쳤었나봅니다.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닌데...홀렸나봅니다. 속절없이 아픈 저희 온양이가 무슨 죄여요. 정말 다른 방도는 전연 없을가요."

 

 

"없소. 가시오."

 

 

"선생님 제발요... 신이 있다면 아이 아빠는 벌을 받겠지요. 하지만 우리 온양이한테까지 그 벌을 받으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혹합니다..."

 

 

다급했던 온양이 엄마는 선생님의 바짓자락을 덥석 잡았습니다.

 

 

 

"이러시지 마시오."

 

 

"선생님 제발요 흑흑"

 

 

"놓으시오! 음? 그런데 이 손에 묻은 노란 이건 무엇이오?"

 

 

"아 이거요? 어젯밤 산속에서 주은것 입니다. 이 노란빛이 길을 인도해주어 덕분에 멧돼지 굴 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유황인가 하여 혹 온양이 병 고칠 때 도움이 될까 줍다보니 손에 묻었나봅니다."

 

 

"어미가 이리 아둔하니 자식이 고생하지. 그게 어지 유황이오? 금이지! 어쩌면 온양이 구할 방도가 아예 없는 건 아닐 것 같소. 부러진 옥비녀와 주웠다는 유황이 아니라 금 이리 주시오."

 

 

"정말요? 방도가 있나요??  네네 여기요."

 

 

"잠도 제대로 못 잔 것 같은데, 방해되니 내 작업하는 동안 저리가서 눈좀 붙이시오."

 

 

 

 

몇시간이 흘렀을까요. 눈 떠보니 한 켠에 옥비녀만 덩그러니 놓여있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부러진 옥비녀를 금으로 정성스럽게 이어 붙여 놓았습니다.

 

 

 

옥비녀  19세기  옥, 금

 

옥은 황금이 전해지기 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널리 사랑했던 보석으로, 예로부터 은 왕실과 귀족들의 욕구를 만족시켰으며 이에 따라 많은 장신구들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은은한 광채를 내는 아름다움 덕분에 조상들은 중요한 의례에 예기로 사용하였고, 고귀한 의미 덕분인지 왕실과 귀족들사이에서 장례때 많이 사용 되었다. 옥으로 시신을 감싸는 옥갑이라던지, 부여 송국리 석관묘에서 출토된 곡옥(곡옥은 이후 5-6세기 신라 무덤인 경주 천마총, 월성로 고분, 금관총, 황남대총 등에서 대거 출토), 그 밖에 부장품으로 들어간 옥으로 만든 다양한 장신구가 이를 잘 보여준다.

 

위 유물은 옥으로 만든 무늬가 없는 민비녀이다. 비녀집에 넣고 조심히 다룬다고 해도 성질이 워낙 약해 부러지는 일이 잦았을 것이다. 그 때마다 옥 버금가는 귀한 금으로 비녀를 이어 붙여 다시 사용하였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온양이 엄마는 옥비녀를  들고 간밤에 찾아갔던 멧돼지 굴로 다시 갔습니다.

 

 

굴 앞에 다다르니 이미 해는 지고, 다시 어둠이 찾아왔습니다.

 

 

 

"여기 앞에 놓고 가면 될까... 그냥 두고 가면 되는건가..."

 

 

 

조용히 금으로 이은 옥비녀를 놓고 돌아 내려 오려는데, 뒤를 돌으니 어미 멧돼지가 서 있었습니다.

 

너무 놀란 온양이 엄마는 그대로 온 몸이 굳어버렸습니다.

 

 

 

"어...어..."

 

 

 

어미 멧돼지가 천천히 다가왔습니다.

 

온양이 엄마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습니다.

 

어미 멧돼지의 씩씩거리는 콧바람이 코 앞에서 느껴졌습니다.

 

두려운 마음에 눈을 감고 온양이 엄마는 주문을 외우듯 계속해서 중얼 거렸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정말 죄송합니다...같은 어미된 입장으로 정말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마음 풀어주세요. 아무것도 모르는 저희 아이... 제발 살려주세요... 벌은 저희가 받겠습니다...죄송합니다..."

 

 

 

한참이 지났는지, 코 앞에서 느껴지던 어미 멧돼지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조심스럽게 눈을 떠보니 어미 멧돼지도 옥비녀도 사라졌습니다.

 

고요한 산 중에 계곡이 있는건지 개구리 우는 소리만 울려퍼졌습니다.

 

다리에 힘이 풀려버린 온양이 엄마는 털썩 주저앉아 한참을 아이처럼 엉엉 울었습니다.

 

 

 

 

 

정말 옥비녀 덕분인지 온양이는 하루가 다르게 몸이 좋아졌습니다.

 

 

가끔씩 온양이 아빠는 절에서 못걸을 정도로 기도를 하고 내려오곤 했습니다. 왜그러는지 이유를 알 것 같기에 엄마도 따로 묻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온양이네 가족들은 다시 행복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온양이가 어느덧 훌쩍 자라 동네 청년들과 뒷산으로 사냥을 하러 갔습니다.

 

엄마가 왜인지 '뒷산에서 사냥하지마라, 사냥하지마라' 말씀하셨지만 주체할 수 없는 젊음과 친구들과의 친목도모에 빠지기 싫었습니다.

 

 

엄마의 당부는 이미 저편으로 사라진지 오래였습니다. 온양이는 화살을 곧 잘 쏘았고, 친구들도 이렇게 실력이 좋은데 왜 그동안 사냥에 오지 않았냐고 온양이를 치켜 세워줬습니다.

 

 

 

 

푸드드득 탁!!

 

 

 

"앗! 저기 장끼 명중이다! 저리가보자!!"

 

 

 

"음? 여기에 누가 멧돼지 덫을 설치 했었나? 새끼 멧돼지가 걸려있네..."

 

 

 

 

 

온양이는 덫에 걸린 새끼 멧돼지를 구해줄까요?

 

 

 

 

온양이는 엄마를 닮았다 믿으며 이야기 마치겠습니다.

 

 

 

 

 

 

사고는 아빠가 쳤는데, 엄마가 뒷수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