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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치중輜重을 버리고 도망쳤다" 중무장은 생존의 장애물!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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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야 하는 나한테 저런 짐짝은 거추장일 뿐이며, 내 생명을 위협에 빠뜨린다.

 
우리는 중무장 장비를 보고서는 거개 찬탄을 거듭하니

멋진 투구, 폼나는 갑옷, 더 폼나는 말갖춤을 보고서는 와! 저렇게 폼날 수가? 한다. 

이런 반응이 나라고 무에 별다를 수 있겠느냐마는,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말로 불쌍하기 짝이 없어

저러고도 무슨 쌈박질을 하려 하는지 나는 도통 모르겠더라. 

저런 중무장 장비는 개똥폼 낼 때나 잠시간 걸쳤을 뿐이며, 저 상태로는 기동력이 현격히 떨어져 나 같으면 다 벗어버리고 도망쳐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저런 중무장 장비는 늘 강조해서 거듭거듭 말하지만, 전쟁을 해서 이기겠다는 발상의 산물이 아니라 실은 어찌하면 적들이 쏘는 총탄에도 살아남겠다는 처절한 발악의 소산이다. 

그게 그거 아닌가 묻겠지만 그런 측면도 없지는 않겠지만, 이 둘을 구분해서 접근하는 방식이 나는 필요하다고 본다. 
 

저리 해서 무슨 싸움을 벌인단 말인가?

 
저런 중무장 장비를 접근하는 방식이 실상 저런 일을 전업으로 일삼는 사람들, 예컨대 역사학도나 고고학도라 해서 하등 다를 바가 없어,

이 친구들은 그래도 그것을 전업을 삼지 아니한 일반인과는 조금은, 그리고 어딘가는 달라야 하지만, 실물 앞에 눈알이 벌개져서는 이건 무슨 기술로 만들었으며,

이건 주물이 아닌 단조요, 이건 철기문명의 증거를 말해주며, 이건 또 동시대 문화의 한반도적 독특한 발현이요, 이건 또 이리 등장해서 이리 변모하고 이리 발전해갔다 해서

학문의 본령을 망각해버리고는 상찬론만 일삼게 되거니와 

나는 저런 중무장 장비를 볼 때마다, 저런 장비를 하고 다녔을 군인과 우마가 불쌍해 죽을 지경이다. 

다시 말하지만 저 덕지덕지한 중무장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장비가 아니라 내가 죽지 않기 위한 장비에 지나지 않는다. 

저 무거운 중장비는 그런 까닭에 내가 진짜 생명의 위협을 처했을 때는 가장 먼저 버려야 할 물건에 지나지 않았다. 

왜? 저런 중장비는 내 줄행랑의 속도를 현격히 떨어뜨리는 까닭에 내가 목숨을 건져야 하는 절체절명한 순간에는 가장 먼저 버려야 할 짐짝에 지나지 않았다. 

밑도끝도 없는 중무장 상찬론은 이제는 거두어야 할 때다.
 

거추장스런 짐짝에 지나지 않는다.

 
동아시아 전투 장면을 묘사하는 말 중에 빠지지 않고 보이지 않는 말로 치중輜重이라는 말이 있다. 

무슨 전투에서 누구랑 싸워 대승하니, 적이 치중을 버리고는 도망쳤다 

이런 구절로 등장하는데, 저 치중이 바로 중장비 일체를 말한다. 

그래서 전투가 끝난 자리엔 패한 적들이 버리고 간 저런 치중이 산더미처럼 쌓이는 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노획물이라 한다. 

전장터에서 건질 게 시체 말고 더 있냐 하겠지만, 전근대 전투는 그렇지 아니해서 줄행랑한 적들이 버리고 간 치중 하나하나가 다 돈이었다. 

요즘의 대포에 비견하는 중장비도 있고, 개별 군인 병사들이 버리고 간 것들이 수북수북 쌓였으니, 그땐 군량도 내가 지고 다닐 때라, 이 군량조차도 목숨을 건져야 하는 나한테는 짐짝에 지나지 않는다. 

전근대 전쟁은 실은 중무장 장비 일체를 도판판에 내건 all or nothing의 생존 게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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