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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지증왕의 아버지를 찾아서] (2) 화랑세기와 상장돈장이 말하는 기보와 습보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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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번 지적했지만 남당 박창화 필사물 중에는 《화랑세기》만 아니라 그와 뗄 수 없는 세트로 《상장돈장上章敦牂》이라는 화랑세기 등장 인물들을 중심으로 하는 계보도가 있다는 말을 했다.

현존 화랑세기는 워낙 훼손 결락이 심해 그 원본의 본래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우리는 알 길이 없다. 그 탈락 결락한 상당 부분을 우리는 이 상장돈장을 통해 보충한다.

그렇다면 화랑세기, 그리고 이 상장돈장에는 지금 우리의 관심인 지증왕의 두 아버지 습보習寶와 기보期寶가 어떻게 처리되는가?

나아가 그것이 현재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보이는 습보 기보와는 어디에서 만나고 어디에서 갈라지는가? 

그에 앞서 우리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각기 보이는 습보와 기보를 다시금 정리할 필요가 있다.

앞서 보았듯이 먼저 삼국사기를 따르면 습보는 내물왕의 손자로서 눌지왕 딸인 조생 부인과의 사이에서 지증을 낳았다. 습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누락됐다.

아무튼 이에 의하면 지증왕은 내물왕 증손이 된다. 이런 습보를 갈문왕이라 불렀는데, 이는 틀림없이 그의 아들 지증이 즉위하고 나서 추봉됐을 것이다.

다음 삼국유사에 따르면 지증은 눌지왕 동생인 기보가 오생烏生 부인에게서 낳은 아들이다. 오생은 삼국사기가 말하는 눌지왕 딸 조생鳥生의 오기다. 이에 의하면 지증은 내물왕 증손이 아니라 손자다.

삼국사기에 견주어 아버지가 다를 뿐만 아니라 대수도 하나 빨라진다. 이런 그를 삼국유사 역시 갈문왕이라 일컬었으니, 이 역시 아들 지증이 즉위하고 나서 받은 추봉 호일 것이다.

그렇다면 화랑세기와 상장돈장에도 이들이 등장하는가? 다행히도 이 두 사람 다 등장한다. 이런 계보 충돌을 고민한 이종욱 선생은 화랑세기 출현 이전에도, 그리고 출현 이후에도 여전히 기보와 습보를 부자 관계로 설정해 이해하려 한다.

이종욱 선생 견해대로라면 지증왕의 아버지를 둘러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충돌 문제는 간단히 해결된다. 하지만 화랑세기와 상장돈장에는 전연 그렇지 않다.

이제 번잡한 것들을 다 빼고서 습보와 기보의 계보를 그려 제시하면 아래 첨부 사진과 같다.




(2017. 1. 15)

 
***

신라 제22대 지증왕 계보를 둘러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도저히 섞일 수 없는 상이점들.

이는 신라 중고기 왕실 계보의 거대한 비밀이요, 그런 까닭에 신라사 연구자들에게는 치료해야 할 거대한 암덩이였다.

이 거대한 비밀이 화랑세기를 만나 일순간에 봄눈 녹듯 사라진다.

화랑세기를 가짜라 하고 쳐다볼 생각을 않으니, 지금도 지증왕 아비를 둘러싼 헛소리들이 횡행한다.

첨부한 저 계보도 잘 봐 주었으면 한다.

마립간시대 신라 왕실의 모든 계보가 저에서 풀린다.

이 문제는 결국 소지왕(비처왕) 왕비를 둘러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혼란도 일거에 해결한다.

뭐 이걸 다 박창화가 꾸며냈다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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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증왕의 아버지를 찾아서] (1) 습보와 기보 : 두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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