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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덕眞德, 꿔다논 보릿자루 멀대여왕] (2) 또 다른 보릿자루 알천

by Herodopedia taeshik.kim 2021.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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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덕을 왜 꿔다논 보릿자루라 하는가? 단순히 여왕이었기 때문인가? 물론 아니다.

 

여주女主로 무자비한 철권통치를 구가한 이가 역사에는 한둘이 아니어니와, 그의 사촌언니로서 직전 재위한 선덕善德만 해도, 그런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을지 가늠이 힘들기는 하나, 단순히 꿔다논 보릿자루는 아니었던 듯하거니와, 그것은 무엇보다 그의 즉위가 그 자신이 직접 개입한 권력투쟁의 산물인 까닭이다. 이 이야기는 훗날 다시 말할 기회가 있을 듯하니 여기서는 제끼고 진덕에 집중하기로 한다. 


남산 오지암 신라 국보위..이는 진덕왕 시대 절대권력 김유신이 급조한 원로원이었으니 그 명목상 좌장은 알천이었다. 호림이 불만한다. 비대면으로 하지 이게 뭐냐고? 다들 김유신한테 끌려나왔다.

 

 

진덕은 우선 왕이 되는 과정에 곡절이 없지는 않았으니, 그의 집권과정을 엿볼 만한 흔적이 거의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기존 기록은 물론이고, 화랑세기에도 이 대목에 대한 기술이 거의 없다. 물론 현재 우리한테 주어진 화랑세기가 매우 불완전한 텍스트인 데다가, 무엇보다 망실이 적지 않아 그 사라진 어딘가에는 그것을 엿볼 만한 구석이 없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있지만, 죽은 아들 불알 만지리라, 입맛은 그만 다시기로 한다. 

 

포스트 선덕을 대비한 후사는 선덕 재위시절에 이미 진덕으로 정해진 것은 확실하다.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 선덕왕 말년, 또 여주女主인가 하면서 재위 찬탈을 노린 반란이 일어난 까닭이라, 비담毗曇과 염종廉宗이 역모자 주동이었다. 이들이 후계 구도로 진덕이 채택되지 않은 상황에서 "여주가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는 명분을 내걸고 반란할 수는 없는 법이다. 

 

문제는 진덕을 지지한 배경 혹은 힘은 무엇인가다. 진덕은 성골로는 신라왕실에서 남은 마지막이라, 그때까진 오직 왕위는 성골만이 독점해야 하므로, 그 논리를 이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 논리를 따르는 사람들을 주류라 하겠거니와, 비담과 염종, 그리고 이에 부화해 반란에 동참하거나 동조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이들을 반주류라 할 만하다. 

 

이 무렵 그 주류, 혹은 당대 권력 구도는 이 반란이 진압되고 나서 전개되는 그것을 보면 대략 드러난다. 널리 알려졌듯이 신라를 일대 혼란에 빠뜨린 비담의 반란은 우여곡절 끝에, 간난 끝에 진압되니, 그 반란진압 총사령관이 바로 김유신이었다. 

 

절대의 혈통을 자랑하는 그는 이미 이 무렵에도 절대의 전쟁영웅이었다. 595년 생인 그는 반란 당시 이미 53세였다. 적지 않은 나이였거니와, 전성을 구가하는 나이이기도 했다. 혈통과 전쟁으로 구축한 명성을 바탕으로 반란까지 진압했으니, 그것이 끝났을 때 이미 신라는 그의 수중에 있었다. 나는 그의 위상을 국보위 시절 전두환에 비긴 바 있다. 

 

하지만 정치를 어디 혼자서 하는가? 동조자를 규합하기 마련이며,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장면을 연출하는데 바로 원로 대접이 그것이다. 전두환이 선배 원로들을 대접한다는 명분으로 국보위를 조직했듯이, 실상 김유신 역시 똑같은 원로원 회의체를 조직한다. 이런 원로들을 통해 내가 하는 정치가 독재가 아님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젊은시절 맨손으로 호랑이도 때려잡았다는 전설의 주먹 알천. 하지만 그도 시대가 바뀌어 김유신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다. 김정일 김정은 시대 김영남이었다.

 

 

그렇다면 진덕왕시대(647~654) 국보위 멤버는 누구인가?

 

삼국유사 권 제1 기이紀異 진덕왕眞德王 다음 이야기가 그 멤버들을 폭로한다.

 

왕이 즉위하던 시대에 알천공閼川公·림종공林宗公·술종공述宗公·호림공虎林公(자장慈藏의 아버지다)·렴장공廉長公·유신공庾信公이 있었다. 이들은 남산南山 우지암亏知巖에 모여 나랏일을 의논했다. 이때 큰 범 한 마리가 좌중에 뛰어들었다. 여러 사람이 놀라 일어났으나 알천공만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태연히 담소하면서 범 꼬리를 잡아 땅에 메쳐 죽였다. 알천공은 완력이 이처럼 셌으며 그를 윗자리에 앉혔다. 그러나 모든 이는 유신공의 위엄에 심복했다. 

 

이들이다! 이들이 국보위 멤버들이다! 6명을 거론했거니와, 화랑세기가 공개되고서 우리는 또 한 가지를 알게 되었는데, 저들 6명이 등장하는 순서에 얽힌 내력이다. 왜 김유신을 꼬바리로 거론했을까?

 

당시 53살인 그가 가장 어렸다!!! 


선배들 대접한다고 국보위 조직하고 권력정당성을 주장한 김유신

 

 

또 하나 우리가 유의할 점은 저런 이름들이 병렬로 나열될 적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친구와 맨나중에 등장하는 친구 둘을 주목해야 한다는 점이다. 조용필은 언제나 마지막에 나오는 법이다!

 

저에서 우리가 눈을 부릅뜨고 봐야 할 대목은 

 

알천공은 완력이 이처럼 셌으며 그를 윗자리에 앉혔다. 그러나 모든 이는 유신공의 위엄에 심복했다. 

 

는 대목이다. 이 말이 무슨 뜻인 줄 모르는 바보는 없으리라. 그럼에도 이 대목을 액면대로 읽지 못하고 사학도라는 놈들이 빌빌 꼬았다. 빌빌 꼬아야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그것으로써 전문가 행세를 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틀렸다. 완전히 헛다리를 짚었다. 

 

저 말이 무슨 뜻인가?

 

김유신이 조직한 국보위이며, 알천은 나이가 가장 많다 해서 모신 원로원 원장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뭐냐? 얼굴마담이었다. 그랬다. 알천은 꿔다논 보릿자루였으며 김유신의 꼭두각시였다. 전두환 시대 강영훈 같다고나 할까?

 

이런 알천을 두고, 그리고 저 구절을 두고 헛소리가 난무한다. 그가 상대등으로 섭정을 했다느니 하는 망발이 그것이다! 이런 놈들이 신라사 연구자로 행세한다! 

 

한데 이와 흡사한 대목이 화랑세기에도 보인다. 

 
14세 호림공虎林公 전 한 대목이다. 

 

(호림공은) 조정 일에 간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국가에 큰 일이 있으면 반드시 받들어 물었다. 알천공閼川公·림종공林宗公·술종공述宗公·렴장공廉長公·유신공庾信公·보종공宝宗公과 더불어 칠성우七星友를 이루어 남산에서 만나 노니니, 통일의 기초가 공 등에게서 비롯되었다. 성대하고 지극하도다.

 

삼국유사와 비교할 적에 보종을 보강한다. 이들이 일곱이라 칠성파를 이루었다. 김유신은 칠성파 두목이라는 말 기억할 것이다. 

 

이제는 안다. 저 삼국유사는 화랑세기를 전범으로 삼는다. 그것을 기초로 해서 후대 첨가한 이야기들을 버무려 생성된 사화史話임을 이제는 알겠다. 

 

김영남. 지금은 물러났거니와 그는 명목상 국가원수였다. 진덕왕시대 알천을 이해하는 키워드가 김정일 김정은 시대 김영남이다. 꿔다논 보릿자루였다. 

 

진덕왕시대는 김유신의 시대였다. 김유신이 독재하는 시대, 김유신이 원로들을 내세워 독재하는 시대였다. 그래서 진덕왕본기는 실은 김유신본기다. 

 

김유신 독재시대는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 그의 독재는 또 한번 결정타를 발휘하는데, 진덕왕이 죽을 무렵, 후계자를 그 자신이 지목해서 세운 것이다. 

 

그의 권력은 태공 망보다 컸고, 이윤伊尹을 능가했으며, 곽광을 우습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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