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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HISTORY

신라 화랑 설치를 둘러싼 착란

by taeshik.kim 2021.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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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十七年春 始奉源花" [진흥왕] 37년 봄에 처음으로 원화源花를 받들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 37년

"三十七年, 始奉原花爲仙郞" [진흥왕] 37년 처음으로 원화原花를 받들어 선랑仙郞을삼았다.
《해동고승전》

"國史 眞智王大建八年丙申 始奉花郞 恐史傳乃誤"  국사國史에서 이르기를 진지왕 대건 8년 병신년에 처음으로 화랑花郞을 받들었다 했으니, 이는 아마도 역사의 전언이 잘못일 터이다. 
《삼국유사》 권 제3 제4 탑상塔像 미륵선화∙미시랑∙진자스님弥勒仙花未尸郎真慈師

 

착란이었다. 이 착란의 뿌리는 다음이다.

"始奉薛原爲花郞"  처음으로 설원랑을 화랑으로 삼았다. 

이것이었다.

 

(2018. 4. 5) 

 

 

****

 

신라가 언제 화랑을 설치했는지를 둘러싼 혼란은 그 사정을 전하는 저와 같은 기록들에서 말미암는다.

 

신라가 화랑을 설치한 시기는 진흥원 즉위 원년 서기 540년이며, 그 설치 주체는 수렴청정을 하던 지소태후였으니, 진흥왕 생모이자, 죽은 입종갈문왕 부인이며, 법흥왕 딸이다. 

 

그렇게 구성한 조폭 조직 우두머리를 화랑花郞이라 했으니, 풍월주風月主라고도 했다. 초대 풍월주는 위화랑魏花郞이었다. 

 

그럼에도 왜 기록에는 진흥왕 말년(재위 37년), 서기 576년에 화랑을 설치했다고 했을까?

 

이때 화랑, 곧 풍월주로 임명된 이가 설원랑薛原郞이었으니, 나중에 이름을 화랑花郞으로 바꾸어 설화랑薛花郞이 된다. 

 

설원랑, 곧 설원랑은 그 직전 화랑이 폐지되고 원화源花가 부활하는 진통을 겪고 나서 그것이 부활하면서 그 자리에 취임했으니, 곧 저들 사전史傳에서 말하는 진흥왕 말년 화랑 설치 기사는 바로 이를 말함이다. 

 

그렇다면 다른 곡절은 없는가?

 

이때 부활한 풍월주 이름이 하필 설원랑薛原郞 혹은 설화랑薛花郞이라는 데 있다. 이 친구 성이 설씨薛氏라, 그 유명한 원효의 직계 조상인데(고조부 아닌가 한다), 이름이 원랑原郞(原은 源이라는 글자와 흔히 혼용했다), 혹은 화랑花郞이라, 하필 화랑이라는 이름이 그의 풍월주 취임을 신라에서 마치 처음으로 화랑이 이때 설치된 것과 같은 착란으로 발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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