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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책을 낸다는 1903년 요란한 황성신문 광고, 하지만 정작 찍은 책은 없었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2.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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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신문을 읽다가>

1. 1903년 1월 22일, <황성신문皇城新聞>에는 이런 고백告白(이라고 쓰고 광고라고 읽는)이 실린다. 고백이라고 했으면 뭔가 달달한 내용이겠거니 할지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 전혀 남과 여의 사랑하고는 상관없다. 그럼 무슨 내용이냐! 

⊙本社에셔 有志者 幾人이 資本을 鳩合하야 我韓自古로 野史雜誌와 奇文異書와 國朝故事文獻을 收集하야 訂校發刊하야 國內에 廣布하겠사오니 勿論遠近하고 故事文獻에 可攷할 書冊이 有압거던 本社로 來議하시면 爲先重價를 不惜하고 其書冊을 購買도 하려니와 將次 刊布할 터이오니 四方有志僉君子는 照亮來議하심을 伏望

左開書冊

羅麗以來史記等書如三國遺事高麗圖經之類
國朝以來故事文獻如燃藜紀述靑野謾輯之類
東國地誌如輿地誌東京志八域志之類
先輩政治農工攷據等書如星湖僿說磻溪隨錄課農書之類
皇城新聞社 告白

(주: 아래아는 변환이 안되므로 'ㅏ'로 씀)


2. 한자가 한 자 이상이므로 무슨 내용인지 요약하면, <황성신문> 본사에서 몇몇 사람이 자본을 모아 우리나라 옛날 책을 모으고 교정해 발간하려 하매, 뭔가 집에 귀한 책이 있으면 비싸게 주고 살 테니 들고 오라는 뜻이다. 

3. 그러면 이 사람들은 무슨 책을 구해서 인쇄하려 했는가? <삼국유사三國遺事>, <고려도경高麗圖經>, <연려실기술燃藜室紀述>, <청야만집靑野謾輯>, <여지지輿地誌>, <동경지東京志>, <팔역지(八域志, 택리지의 이명異名인듯)>, <성호사설星湖僿說>, <반계수록磻溪隨錄>, <과농서(課農書, 과농소초課農小抄인지?)> 따위 종류의 "신라와 고려 이래의 역사서, 조선초 이래의 국고문헌, 우리나라 지리지, 선배들의 정치서와 농서, 공서, 공구서" 등등이었다. 지금이야 역사를 좀 안다는 분이라면 읽지는 못했어도 이름쯤은 들어본 책들이다.  

4. 이 광고는 한 석 달 내리 <황성신문>에 실린다. 비슷한 시기, 황성신문사에서 낸 책들이 더러 전하는데 <회사법會社法>이나 <정치원론政治原論> 같은 것부터 <만국사물기원역사萬國事物紀原歷史>나 <대한강역고大韓疆域考>, <애급근세사埃及近世史>, 심지어는 <소채재배전서蔬菜裁培全書>라고 채소 기르는 법 적은 책도 있다(그 저자가 위암韋庵이다). 그런데 정작 위에 언급한 고전들은 인쇄하지 못하고 만 모양이다. 이런 책들이 근대 활판으로 인쇄되려면 몇 년 뒤, 일본인 주도의 조선고서간행회나 최남선의 조선광문회를 기다려야했다(예외적으로 <삼국유사>는 1904년에 도쿄에서 나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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