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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제주 의귀리서 만난 헌마공신 김만일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2.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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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날도 좋고, 공적인 일 아니면 가기 힘든 곳을 사적으로라도 가보자 싶어서 나온 곳이 제주의 중산간지대 마을 중 한 곳인 의귀리다. 거기에 조선시대 제주인으로 가장 높은 지위에 올랐던 입지전적 인물, 헌마공신 김만일(1550-1632)을 기리는 기념관이 있다.

2.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 출신인 김만일은 제주에서 말을 엄청나게 길러냈던 인물이다. 그가 처음 기른 한 마리 숫말이 도망갔다가 암말 80여 마리를 이끌고 돌아왔다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기록으로 남은 그의 진헌進獻 말 두수만 해도 천 마리는 가뿐히 넘는다. 그는 임진왜란 당시 조정에 말 수백 마리를 바쳤고, 이후에도 필요할 때마다 목장에서 기르던 말을 바치곤 했다. 요즘으로 치면...전차 공장이나 자동차 공장의 공장장이었다고 해야 할까?




3. 조정에서는 그에게 여러 차례 포상을 내렸다. 최종적으로 그가 받은 관계官階는 종1품 숭정대부. 부총리급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 손자도 무관 관직에 올랐고, 산마감목관山馬監牧官이란 자리를 만들어 세습을 허용하기까지 했다. 과거로 관료를 뽑던 조선시대, 세습이 허용된 관직은 이것뿐이었다.

4. 이렇게만 들으면 김만일은 부귀영화를 있는 대로 누린 줄 알겠지만, 그를 바라보는 중앙 관료들의 시선은 절대 따뜻하지 않았다. 광해군 때 그를 실직에 임명했음에도 관료들이 실무를 맡기지 않고 따돌리는가 하면, 손자에게 관직을 임명한다는 명이 내려왔어도 대놓고 비웃고 뭉개기까지 했다. 그가 섬 사람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제주목사도 김만일 부자父子를 불러다 말을 내놓으라 윽박지르고 때리기까지 했다니, 그 정도 공을 세운 이도 대접이 이랬다면 그들이 제주의 백성은 어떻게 여겼겠는가.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5. 기념관 건물은 번듯했고 전시도 크게 나쁘지 않았다. 곳곳에 놓인 의자며 체험물이며 모두 '말'이라, 세심하게 신경써서 꾸몄다는 느낌이다(물론 이것이 100% 완벽하다는 뜻은 아니다). 의귀리 마을박물관 역할도 겸하는 듯 말미에는 그때 그시절, 아버지 어머니 세대 추억이 어린 생활용구들이 놓여있다. 모두 이곳 주민들이 기증한 것이다. 진열장 없이 놓여있어 자칫 안전사고가 일어날까 걱정은 되었지만서도.




6. 나오면서는 그 유명한 "말뼉다구"도 있고, 표정으로 읽는 말의 마음(馬앙딸리떼?)를 보여주는 패널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제주 말의 유래와 역사, 생태에 관한 전시물이 더 많았으면 하지만...






7. 하여간 생각보다 괜찮았고,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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