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天然記念物은 천연天然이 빚어낸 기념할 만한 것이라는 뜻이니 그에 대한 영어 대응 표현 natural monument 역시 오직 nature만을 염두에 둔다.
이 경우 천연天然 혹은 nature는 그 어떤 경우건 인간 human이라든가 그 족속이 이룩한 정신과 물산 총합인 culture는 배제한다. human 혹은 culture 라는 요소가 혼재하는 순간 천연 혹은 natural 이라는 의미를 상실해버린다.
그런 점에서 이 천연기념물이야말로 세계유산 개념으로 말하거나 견주건대 진짜 natural heritage에 해당한다.
국내 문화재 분류 체계는 내가 하도 여러 번 지적했듯이 당시 시대 한계를 고스란히 담은 식민지시대 유산과 일본 문화재보호법을 그대로 계승(실은 표절이다)하는 바람에 뒤죽박죽 스스로가 모순투성이거니와, 작금 문화재청이 추진하는 문화재보호법 전면 개정안은 실상 그 불합리를 바로잡는데 초점이 가 있다.
물론 문화재청이 내놓은 개정안도 모순인 대목이 적지 아니해서 무엇보다 문화재 분류 체계를 1. 문화유산 2. 자연유산이라고 분류한 것까진 좋았는데, 문제는 그 대분류에 느닷없이 3. 무형유산을 설정했다는 데 있다.
그 생성과정에 인위가 개입했느냐 아니냐로 구분한다면 오직 1번과 2번이 있을 뿐이며, 3번은 실상 문화유산에 해당해서 형용모순이다.
내가 그간 이 대목을 눈감은 이유는 그나마 이런 시도조차 없었기 때문이며, 우선은 급한 대로 저렇게라도 고쳐놔야 나중에 개정이 가능할까 하는 소박한 소망 때문이다.
암튼 개정안도 그렇고, 세계유산 분류 체계에 맞춰봐도 우리네 국가지정문화재를 저 기준에 대응하면 완전한 자연유산은 오직 천연기념물이 있을뿐이며 기타 국보니 사적이니, 중요민속문화재니, 무형문화재니 하는 것들은 다 문화유산에 속한다. 우리의 문화재 정책이 얼마나 유형문화재, 특히 문화유산 중심인지를 저 분류에서도 단박에 직감한다.
이 경우 아주 독특한 위상을 점거하는 지정문화재가 명승名勝이다. 명승? 아주 뛰어난 경관을 말한다. 명승이라고 하면 대뜸 저 분류에 의하건대 자연유산이 아니냐 생각하겠지만 웃기는 소리! 우리네 명승은 단 한 번도 인간을 떠나 접근한 적도 없고, 그럴 생각이 추호도 없다.
그럼에도 이 명승은 자연유산이라는 성격도 매우 강해서, 그 인문환경을 형성하는데 그 자연유산 성격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세계유산 분류 개념에 의하면 우리가 말하는 명승이야말로 복합유산 거기에 딱 안성맞춤이다.
이 복합유산이 지닌 함의 혹은 문제에 대해서는 앞선 글에서 조금 심도깊에 다뤘으니 아래 링크를 참고해 주기 바란다.
복합유산을 둘러싼 오해, 자연유산이면서 문화유산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천연기념물은 어떠한가? 저 세계유산 기준, 혹은 문화재보호법 개정안에 견주면 진짜로 천연기념물은 자연유산 딱 거기에 해당할까?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고, 아니라는데 대한민국 문화재의 특성이 고스란히 그리고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어떤 점에서 그런가?
***
얘기가 또 길어지는 바람에 일단 끊고서 다음회에 별도 코너를 마련한다.
(추기)
또 하나 저 본문에서 내가 오류를 범한 대목이 있다.
문화재청이 제출한 문화재보호법 개정안에서 자연유산을 명승의 경우 자연명승과 역사문화명승으로 구분한 점을 내가 망각한 것이다. 이 점은 이상석 선생이 질의했으므로 그 질문을 통해 내가 고려하지 못한 대목을 나 스스로 일깨운다.
나는 시종일관 저 개정안은 아직 내 의견을 피력할 때가 아니라 해서 뒤로 미뤘으며, 지금 다루는 주제 역시 그것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지만 어째 저 개정안도 제대로 분석야 한다는 압박이 생기기 시작했다.
저 질문을 통해 나는 명승 역시 성격에 따라 순수 자연유산이라 부를 만한 것들이 있음을 간과했다. 이건 내 착오다. 다만 그 착오는 나중에 바로잡을 기회를 엿보기로 하며, 우선 이 자리에서는 모든 명승이 문화유산이라는 저 본문 기술은 내 오류가 있다는 점을 우선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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