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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천연기념물과 명승, 문화유산과 자연유산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2.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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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서사. 사찰 자체야 물론 문화유산이지만, 저 산들은 어찌할 것인가? 문화유산은 주변 자연과 어울려 인문경관을 빚어낸다.


천연기념물天然記念物은 천연天然이 빚어낸 기념할 만한 것이라는 뜻이니 그에 대한 영어 대응 표현 natural monument 역시 오직 nature만을 염두에 둔다.

이 경우 천연天然 혹은 nature는 그 어떤 경우건 인간 human이라든가 그 족속이 이룩한 정신과 물산 총합인 culture는 배제한다. human 혹은 culture 라는 요소가 혼재하는 순간 천연 혹은 natural 이라는 의미를 상실해버린다.

그런 점에서 이 천연기념물이야말로 세계유산 개념으로 말하거나 견주건대 진짜 natural heritage에 해당한다.

국내 문화재 분류 체계는 내가 하도 여러 번 지적했듯이 당시 시대 한계를 고스란히 담은 식민지시대 유산과 일본 문화재보호법을 그대로 계승(실은 표절이다)하는 바람에 뒤죽박죽 스스로가 모순투성이거니와, 작금 문화재청이 추진하는 문화재보호법 전면 개정안은 실상 그 불합리를 바로잡는데 초점이 가 있다.

물론 문화재청이 내놓은 개정안도 모순인 대목이 적지 아니해서 무엇보다 문화재 분류 체계를 1. 문화유산 2. 자연유산이라고 분류한 것까진 좋았는데, 문제는 그 대분류에 느닷없이 3. 무형유산을 설정했다는 데 있다.

그 생성과정에 인위가 개입했느냐 아니냐로 구분한다면 오직 1번과 2번이 있을 뿐이며, 3번은 실상 문화유산에 해당해서 형용모순이다.


바다와 어우러진 동해 해신당. 해신당이라는 인문유산은 바다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내가 그간 이 대목을 눈감은 이유는 그나마 이런 시도조차 없었기 때문이며, 우선은 급한 대로 저렇게라도 고쳐놔야 나중에 개정이 가능할까 하는 소박한 소망 때문이다.

암튼 개정안도 그렇고, 세계유산 분류 체계에 맞춰봐도 우리네 국가지정문화재를 저 기준에 대응하면 완전한 자연유산은 오직 천연기념물이 있을뿐이며 기타 국보니 사적이니, 중요민속문화재니, 무형문화재니 하는 것들은 다 문화유산에 속한다. 우리의 문화재 정책이 얼마나 유형문화재, 특히 문화유산 중심인지를 저 분류에서도 단박에 직감한다.

이 경우 아주 독특한 위상을 점거하는 지정문화재가 명승名勝이다. 명승? 아주 뛰어난 경관을 말한다. 명승이라고 하면 대뜸 저 분류에 의하건대 자연유산이 아니냐 생각하겠지만 웃기는 소리! 우리네 명승은 단 한 번도 인간을 떠나 접근한 적도 없고, 그럴 생각이 추호도 없다.

그럼에도 이 명승은 자연유산이라는 성격도 매우 강해서, 그 인문환경을 형성하는데 그 자연유산 성격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세계유산 분류 개념에 의하면 우리가 말하는 명승이야말로 복합유산 거기에 딱 안성맞춤이다.

이 복합유산이 지닌 함의 혹은 문제에 대해서는 앞선 글에서 조금 심도깊에 다뤘으니 아래 링크를 참고해 주기 바란다.


복합유산을 둘러싼 오해, 자연유산이면서 문화유산일 수는 없다

 

복합유산을 둘러싼 오해, 자연유산이면서 문화유산일 수는 없다

세계유산과 관련해 통용하는 상식으로 대표적인 오독誤讀 혹은 오해가 그 분류를 논하며 자연유산 natural heritage 과 문화유산 cultural heritage, 그리고 복합유산 mixed heritage 세 가지가 있다는 말인데

historylibrary.net



그렇다면 천연기념물은 어떠한가? 저 세계유산 기준, 혹은 문화재보호법 개정안에 견주면 진짜로 천연기념물은 자연유산 딱 거기에 해당할까?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고, 아니라는데 대한민국 문화재의 특성이 고스란히 그리고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어떤 점에서 그런가?


***


얘기가 또 길어지는 바람에 일단 끊고서 다음회에 별도 코너를 마련한다.

 

(추기) 

 

또 하나 저 본문에서 내가 오류를 범한 대목이 있다.

문화재청이 제출한 문화재보호법 개정안에서 자연유산을 명승의 경우 자연명승과 역사문화명승으로 구분한 점을 내가 망각한 것이다. 이 점은 이상석 선생이 질의했으므로 그 질문을 통해 내가 고려하지 못한 대목을 나 스스로 일깨운다. 

나는 시종일관 저 개정안은 아직 내 의견을 피력할 때가 아니라 해서 뒤로 미뤘으며, 지금 다루는 주제 역시 그것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지만 어째 저 개정안도 제대로 분석야 한다는 압박이 생기기 시작했다. 

저 질문을 통해 나는 명승 역시 성격에 따라 순수 자연유산이라 부를 만한 것들이 있음을 간과했다. 이건 내 착오다. 다만 그 착오는 나중에 바로잡을 기회를 엿보기로 하며, 우선 이 자리에서는 모든 명승이 문화유산이라는 저 본문 기술은 내 오류가 있다는 점을 우선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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