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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인문人文과 천연天然의 괴이怪異한 복합 동거 천연기념물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2.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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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이라지만 그 자격 요건을 보면 전연 천연함과는 거리가 먼 당산목 우영우 팽나무


앞서 우리는 문화재청이 우영우 팽나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면서 그것이 당산목인 사실이 확인된다 해서 그 역사성을 들어 "학술적‧역사적 가치가 있다"는 평가가 언어도단임을 보았으니, 다른 누구도 아닌 문화재 행정당국인 문화재청이 천연기념물이 무엇인지를 오도했기 때문이다.

천연기념물이란 천연天然한 기념물을 대상으로 삼는 까닭에 저 역사성을 운위한 대목은 형용모순이니, 간단히 말해 스스로가 스스로를 배반한다.

그렇다. 천연기념물은 천연, 그러니 곧 자연이 빚어낸 기념물이지 인문人文의 소산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바로 이 점에서 한국 천연기념물이 탑재한 특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천연기념물이라고 해 놓고, 인문人文할 것까지 요구하는 그 이상한 특징 말이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천연기념물은 액면 그대로는 인문을 배제한다. 인문이 들어갈 수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것이 천연한 것이라는 본질을 훼손하지 아니해야 하며, 그런 까닭에 천연한 기념물에서 역사성 운위하는 대목은 어디까지나 데코레이션에 지나지 않아야 한다.

저 우영우 팽나무가 그런 것처럼 인문이 주축을 이루는 역사성을 요구한다면 그 기념물은 당연히 이름을 바꿔야 한다. 그것은 천연한 기념물이 아니요 인문한 기념물이어야 한다.

순자가 말한 개념을 빌리건대 저런 속성에 착목한 천연기념물이라는 명칭 혹은 분류는 명名과 실實이 전연 부합하지 아니해서 호랑이라 해 놓고 그것이 식물이라 말하며, 소나무라 해놓고 그것은 고양이에 속한다고 규정하는 꼴과 똑같다.

화성 코리아 케라톱스 화석. 이것이야말로 논란의 여지가 없는 천연기념물이다.



이처럼 천연기념물이라 해 놓고 인문기념물을 요구하는 역설이 한국문화재 현장 곳곳에서 빚어진다.

바로 이 점에서 앞서 예고한 대로 바로 우리네 천연기념물이 유네스코 유산 개념에 의하면 반드시 자연유산에 해당하는 것만이 아니라 실은 문화유산이기도 하다(더 정확히는 문화유산이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이는 앞서 본 명승 역시 마찬가지다(본문에서는 내가 착오를 빚었으니, 그 추기에서 그 착오를 스스로 지적했다.)

실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목록들을 보면 이런 혼란상이 매우 극심해 진짜로 명실이 상부하는 천연한 기념물이 있는가 하면, 전연 천연하지 아니해서 실제는 인문한 기념물도 착종한다.

그 혼란상을 분석하기 위해 우선 천연기념물을 몇 가지 기준으로 분류하고자 한다. 나는 이 천연기념물을 그것이 현재도 생물학적 생명력이 있는가 아닌가 여부에 따라 첫째 생물유산과 비생물유산으로 나눈다.

나아가 그것이 지구상 혹은 한반도에 인류가 탄생 혹은 주거하기 전에 형성된 것인가 아닌가 하는 생성기점을 기준으로 인류 이전 유산과 인류 이후 유산으로 나눈다.

이 두 가지 기준으로 보건대 인류 탄생 혹은 주거 이전 비생물유산이야말로 백퍼 자연유산이다. 우리한테 흔한 것들로 주상절리라든가 인류 탄생 이전 지질시대 화석(유적)이 대표적이며 이것이야말로 명실이 상부하는 진짜 천연기념물이다.

반면 생물유산이면서 인류 탄생 혹은 거주 이후 출현한 천연기념물은 혼란이 극심하다. 우영우 팽나무를 비롯한 무수한 당산목 혹은 그에 준하는 노거수老巨樹, 예컨대 느티나무나 다른 팽나무, 그리고 은행나무가 특히 그렇다.

이에는 진짜 천연기념물과 가짜 천연기념물(가짜라 하면 실제로는 천연하지 아니한 인문기념물을 말한다.)이 뒤죽박죽이다. 저들 당산목은 가짜 천연기념물이지만 수령 1천700년이라는 소백산 주목은 진짜 천연기념물에 속한다.

기타 기어다니거나 날아다니는 생물유산 역시 진짜 천연기념물이다.

흰꼬리수리. 살아있는 화석이요 진짜 천연기념물이다. by 유형재


비생물유산이면서 인류 탄생 혹은 거주 이후 출현한 진짜 천연기념물도 있을 수 있다. 당장 그 사례가 생각나지는 않지만 예컨대 제주도 용암동굴 중 고려시대 화산폭발로 생겨난 것이 있다면 그건 진짜 천연기념물이다.

이런 뒤죽박죽 혼란상은 명승에서도 반복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문화재보호법 개정안이 기존 명승을 자연명승과 역사문화명승 두 가지로 갈라치기 하려는 고민이 바로 이에서 말미암는다. 전자가 진짜 천연기념물이요, 후자는 가짜 천연기념물, 곧 문화유산이다.

이 천연기념물과 명승의 저와 같이 혼란상은 이참에 아예 뿌리를 뽑아야 한다. 명승 중의 자연명승과 천연기념물 중의 진짜 천연기념물은 하나로 합쳐 천연기념물로 재분류하고, 나아가 그 천연기념물은 자연유산 하위 범주로 끌어내려야 한다.

나머지 가짜 천연기념물과 역사문화명승은 당장 마뜩한 분류는 아니겠지만 예컨대 인문경관과 같은 새로운 개념을 설정하고는 문화유산의 하나로 재배치해야 한다.

요약하자면 천연기념물이라고 하면 말 그대로 천연이 빚어낸 기념물을 대상으로 해야 하지만, 그에 대해 전연 천연하지도 않은 인문의 요소들까지도 필수 구비자격 요건(이른바 필요조건)으로 요구하는 언어도단, 형용모순, 희대의 역설은 끝내야 한다.

우영우 팽나무가 천연기념물이라면 그것은 천연이 빚어낸 팽나무 그 자체만을 따진 결과여야지, 어찌하여 웬 뜬금포로 인문역사성까지 자격으로 요구한단 말인가? 그건 천연기념물이 아니라 인문기념물이다.

이는 결국 세계유산의 오퍼레이셔널 가이드라인즈에서 말한 복합유산이 필요함을 말해준다.

이 두물머리는 자연유산인가 인문유산인가? 복합유산 그 전형이다.


복합유산이 뭐 대단한 거라 생각하겠지만, 희한하게도 한국 문화재행정에서 말하는 명승 혹은 천연기념물(중 일부가 이미)이 이미 복합유산이었던 것이다!!!!

바로 이에서 한국문화재 행정의 특질이 있는 것이며, 이 특질이 바로 세계 문화재 흐름과도 이미 일맥으로 상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걸 우리가 몰랐을 뿐이다!!! 왜?

왜? 왜? 왜? 를 고민한 문화재행정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화재가 무엇인가에 대한 처절한 고민이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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