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계절의 노래(42)
시내 마을 즉흥시[溪村卽事] 두 수 중 둘째
[남송(南宋)] 왕자(王鎡, ? ~ ? ) / 김영문 選譯評
깊은 봄 물 따뜻해
쏘가리 살찌는 때
바구니 찬 산골 아이
고사리 캐 돌아오네
산길 내내 꿀벌 소리
끊임없이 들리나니
가시 달린 찔레꽃이
산천 가득 피어 있네
春深水暖鱖魚肥, 腰筥山童采蕨歸. 一路蜜蜂聲不斷, 刺花開遍野薔薇.
쏘가리 살찌는 때에 왜 고사리를 캐는가? 쏘가리는 한자어로 궐어(鳜魚)다. 고사리는 한자어로 궐(蕨) 또는 미(薇)라고 한다. 궐어(鳜魚), 채궐(采蕨), 야장미(野薔薇)의 연결이 교묘하다. 봄이 깊어 시냇물이 따뜻해지면 쏘가리가 살찐다. 같은 때 산중에는 고사리가 살찐다. 보릿고개에 이 두 먹거리를 섞어 끓이면 무엇이 될까? 또 이 시절엔 온 산천 가득 찔레꽃(野薔薇)이 핀다. 배고픈날 엄마를 기다리며 따먹은 그 찔레꽃이다. 아름다운 풍경과 고단한 삶의 극적인 대비다. (2018.05.22.)
한자 중에서 가장 흔한 글자는 형성자(形聲字)다. 형성자는 성부(聲部)와 의부(義部)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면 청(淸), 청(晴), 청(菁), 청(鯖) 등의 글자를 보면 형성자의 원리를 알 수 있다. 이 글자의 의부인 수(水), 일(日), 초(草), 어(魚)는 모두 뜻을 나타내고 청(靑)은 발음을 나타낸다고 한다.
역대로 성부가 형성자의 뜻과 관련이 있다는 학설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송나라 왕자소(王子韶)는 그것을 우문설(右文說)이라 했다. 청나라 황승길(黃承吉)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형성자의 같은 소리는 모두 같은 뜻을 지니며 뜻은 소리에서 발단한다고 주장했다. 쉬운 예로 청(淸), 청(晴), 청(菁), 청(鯖)은 모두 청(靑)이란 뜻인데 수(水), 일(日), 초(草), 어(魚)는 청(靑)의 뜻을 부류별로 나눈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문자보다 말이 먼저 있었음을 상기해보면 일리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예외의 사례도 많으므로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근현대에도 선젠스(沈兼士), 양수다(楊樹達), 황칸(黃侃), 류스페이(劉士培) 등이 이 학설을 발전시켰다.
이 시에 나오는 쏘가리 궐(鱖), 고사리 궐(蕨)에도 ‘궐(厥)’이라는 동일한 성부가 있다. ‘궐(厥)’은 현재 ‘그’라는 대명사로 알고 있지만 처음 뜻은 남자가 윗몸을 돌출시켜 근육을 과시하며 힘을 자랑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대궐(大闕)이나 궐기(蹶起)라는 단어에도 그 뜻이 담겨 있는 셈이다. 따라서 ‘궐(鱖)’은 등지느러미가 가시처럼 솟아오른 쏘가리를, 궐(蕨)은 봄나물 중에서 머리를 쳐들고 꼿꼿하게 솟아오르는 고사리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미(薇)’는 뜻으로 연결된 글자인데 한자에서는 고사리를 궐(蕨)과 함께 써서 궐미(蕨薇)라 하고 찔레도 야장미(野薔薇)라고 한다. 모두 봄철에 강과 산과 들이 선물해주는 고마운 먹거리다.
이 시는 ‘궐(鱖)’, ‘궐(蕨)’, ‘미(薇)’ 등 같은 계열의 글자를 교묘하게 연결하여 봄날의 아름다운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이 시를 읽으면 옛날 춘궁기의 고달픈 삶이 떠오른다.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배고픈 날 엄마를 기다리며 찔레를 따먹었다는 애닲은 동요가 머리 속을 맴돈다. 아름다운 풍경과 고단한 삶의 극적인 대비다.
'漢詩 & 漢文&漢文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지 끝 만나러 한층 한층 올라 (0) | 2018.05.27 |
---|---|
저 달빛은 내 맘 알까? (5) | 2018.05.26 |
연지 붉게 칠한 찔레꽃 (0) | 2018.05.25 |
은빛 준어가 뛰어오르면 배부른 누에는 잠을 잔다 (0) | 2018.05.23 |
부처님은 샤워를 좋아해 (0) | 2018.05.2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