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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초고속 승진 가도 달린 최항, 이삼십대에 이미 지공거

by taeshik.kim 2024.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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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언위 손자인 최항崔沆이 역사 전면에 등장한 시점은 고려 성종成宗 10년(991)이라, 이해는 윤달이 끼어 그 윤2월에 실시된 과거시험에 그가 급제해 등단한 것이다. 고려사 그의 열전에는 이때 나이 20세로 갑과甲科에 급제했다 했으니, 972년, 광종 23년에 태어났다. 

20세 등과는 상당히 빨랐으니, 서희 역시 이 나이인가 더 빨리 등단했으니, 할아버지 아버지 위광이 있었다 해도, 대단한 재능을 발휘한 천재임을 엿본다. 

유의할 점은 그는 77세로 장수한 할아버지 최언위 얼굴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앞서 보았듯이 최언위는 이미 944년 사망한 것이다. 이는 마흔두살 다 늙어서 고려로 귀환한 최언위가 귀국 뒤에 새 장가를 갔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어린 놈이 잘나서 이뻤는지 성종은 우습유 지제고右拾遺 知制誥를 제수했다는데, 일찍부터 미래의 재상감으로 육성된 인재임을 본다.
이런 그가 목종 시대에 이미 두 번이나 지공거知貢擧를 맡아 과거시험을 주관했다는데, 목종 재위 기간이 997~1009년임을 볼 때, 20대 후반 혹은 30대에 늙은 노땅 학덕 높은 학자성 관료가 맡는 지공거를 맡은 일은 파격 중의 파격이라 봐야 한다. 

이런 그가 결정적인 공을 세우는 사건이 등단 기점 19년 뒤에 있었으니. 목종 12년(1009) 1월에 발발한 이른바 강조의 변이라, 이 사건으로 폐위된 목종을 대신해 대량원군을 새로운 왕으로 옹립한 이가 채충순蔡忠順과 더불어 최항崔沆이었다.

이 공로에 힘입어 그는 그해 3월 현종이 단행한 인사에서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로 승진하니, 그 반대편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가 바로 앞서 본 김심언金審言이었으니, 한국사 과거시험 초대 장원급제 최섬의 수제자이자 사위였다.

이어 같은 해 7월에는 사부師傅가 되어 청년왕의 공식 스승이 된다. 

 이어 이부상서 참지정사吏部尙書 叅知政事가 되어 재상급에 들어가고 현종 7년(1016)에는 내사시랑 평장사內史侍郞平章事를 거쳐 12년(1021) 8월에는 검교 태부 수 문하시랑 동 내사문하 평장사檢校太傅守門下侍郞同內史門下平章事가 된다, 이 무렵이면 이제 골방 늙은이로 간 느낌이 강하다. 

그런 그가 현종 15년, 1024년 6월 5일에 졸하니 향년 쉰셋이었다.
그보다 무려 24년이나 앞선 948년에 태어난 강감찬은 그가 죽은 다음에도 7년이나 더 살고는 1031년 9월 9일에 졸했음을 볼 때 아무리 인명은 재천이라 해도 참말로 웃긴다. 

최항은 하도 특기해야만 하는 일이 많아 다음 편에서 다른 이야기를 들고 나오기로 한다. 

#최언위 #최항 #고려거란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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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구한 인생을 산 최언위 네 아들, 국제 이산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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