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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쥐어 뜯겨 겨우 남은 고려사, 이른바 최승로 시무 28책(1)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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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우리는 거란 침입, 특히 이른바 제2차 고려거란전쟁에 개경이 함락당하면서 실록까지 몽땅 불타버렸고, 그렇게 망실한 그 시대 역사를 왕명을 받들어 황주량이 겨우 기워 놓은 것이 지금의 목종 이전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전반기 기록이며, 그런 까닭에 부실하기 짝이 없음을 보았다. 

그 시기 일어난 일 중에 그 유명한 이른바 최승로 시무 28조 상서上書가 있으니, 이 역시 딱 그에 해당하는 다 뜯어먹기고는 겨우 남은 흔적에 지나지 아니한다. 

이 시무 28조는 고려사에서는 대서특필하거니와, 한마디로 국가 경영책이라, 조선시대 이와 비견하는 방책이 율곡 이이의 동호문답東湖問答이다. 

최승로 이 시무책을 생각할 적에 먼저 고려해야 하는 사실은 이는 그가 자발로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는 임금의 부름에 응답한 것이다. 그러니 이에는 그 자신의 개인 생각과 더불어 그가 이 글을 쓸 적에 그가 처한 자리가 얼키설키 주물된 생각이다. 다시 말해 그 자신이 최종 편집을 하기는 했겠지만, 그가 맡은 부서원들 생각을 집약했다. 

다음으로 이를 올린 시점이 성종 원년(982) 6월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바로 전해인 981년 8월 14일 경종이 죽자 즉위했다. 

동아시아 사회에서 군주의 즉위는 으레 두 큰 절차가 있으니 첫째가 전왕이 죽자마자 그 관뚜껑 앞에서 왕좌에 오르는 일이라, 이로써 실제는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 

하지만, 해[年] 단위로 시간을 분절하는 전통을 따라 즉위한 그해는 이 새로운 왕의 원년이 아니다. 이 해는 그 왕이 죽고 없더라도 여전히 그 왕의 재위 마지막 해가 된다. 

그렇다면 새로운 시대는 언제 공식으로 열리는가? 그 다음해 1월 1일이다. 이때부터 비로 그 새로 즉위한 왕의 원년이 되는 것이다. 이때 들어서야 새로운 왕과 그를 보좌하는 신 권력은 비로소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정치를 획책하게 되는 것이다. 
 

고려사

 
성종 왕치王治 또한 이에서 하등 예외가 아니어서 이듬해 그의 시대를 열었고, 그 첫 사업 중 하나가 바로 이제 국가 경영 전략을 새로 짜야 하겠는데, 그에 대한 생각들을 기탄없이 말해보라! 는 지침을 하달한다. 

이런 명령이 내려온다 해서 지나개나 아무나 국가 경영은 이래서는 안 되고 저래야 한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원상이라 해서 퇴임한 재상과 현직 재상을 포함해 보통 3품 이상 고위관료만 할 수 있었다. 

이런 관료들은 의무로서 다해야 했다. 왜? 임금이 의견을 내라 했는데 안 내면? 임금 가오가 상하는 까닭이다. 

이때 최승로는 직책이 정광행선관어사상주국正匡行選官御事上柱國이었다. 이 길다란 직책은 정광正匡 행 선관어사行選官御事 상주국上柱國이라, 정광은 보통 노땅 원로대신들한테 주는 명예직에 가까웠다. 신라시대 상대승 비스무리해서 꿔다논 보릿자루 같은 자리다. 2품이라 하지만, 뭐 이 품계는 연봉 많이 타가라 준 것이다. 

흔히 벼슬 이름 앞에 붙은 행行은 간단히 말해 말해 acting 대리 서리라는 뜻이다. 한데 이 경우 두 가지가 있어 품계와 관직이 맞지 아니할 때 흔히 생기는 일이라, 지금은 보통 서리 대리라고 하면 아랫 등급에 있는 사람이 높은 자리를 임시 땜빵하는 일을 지칭하지만, 그 반대가 있을 수도 있잖겠는가?

다시 말해 해당 부서 장관이 무슨 일로 궐위했는데 부총리나 총리가 그 자리를 임시로 땜빵할 수도 있다. 직급과 직책이 맡지 않을 때, 특히 높은 직책이 아랫자리를 임시로 땡빵할 때 저 行을 쓴다. 반대로 직급이 낮은 사람이 궐위한 상관 자리를 대신하는 일을 수守라 한다. 이 둘을 합쳐 이른바 행수법行守法이라 한다. 

선관어사選官御事는 다시 분절하면 선관選官의 어사御事라는 뜻으로 간단히 말하면 선관이라는 부서를 맡은 장관이라는 뜻이다. 이 선관은 말할 것도 없이 지금의 행안부에 해당해서 조직을 담당하는 중책  중의 중책 부서다. 이호예부형공 중에서도 이부吏部에 해당하는 막강 기관이다. 

이 무렵 최승로는 이미 장관을 맡을 짠밥을 지났다. 국가 원로로 그런 자리쯤은 이제는 쳐다도 안 볼 때였고 이는 결국 그가 한편으로는 이제는 꿔다논 보릿자루 신세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 왜 관리 선발을 업무를 맡겼을까?

볼짱없다, 그가 학문이 뛰어난 학자형 관료이므로, 과거 시험 잘 치러 유능한 젊은 인재 발탁하라는 그 의미였다. 

상주국上柱國은 기둥을 세운 國이라는 뜻으로 여기서 國은 제후국이라, 중앙 권력한테서 통치를 위임받은 제후가 다스리는 국가 안의 작은 국가를 말한다. 기둥을 세운다 함은 이를 위한 별도 기구를 설치한다는 뜻이다. 

누가 상주국으로 임명되었다는 말은 그를 보좌하는 작은 정부 조직이 별도로 있다는 뜻이다. 조정으로서는 그만큼 그 사람을 예우한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실상 노땅들 배려용으로 이렇게 한다. 

최승로는 자기 휘하에 별도 공무원 조직을 뒀다. 왜? 원로니깐, 그리 안해주면 삐지니깐, 삐지면 쓴소리만 뻑뻑해대니깐 저런식으로 보통 한다. 

김유신도 그랬다. 상주국이었고, 그래서 그 부관들은 김유신이 공을 세울 때마다 한 계급씩 특진했다. 그러니 이런 주군을 위해 목숨을 불사르지 않겠는가? 그래서 김유신이 돌진 명령을 내릴 때마다 누구나 죽음을 무릅쓰고 전장으로 달려나갔고 그래서 실제로 많이 이가 주군 김유신을 위해 죽었다. 왜? 주군은 자고로 이래야니깐, 내가 죽어도 내 주군이 내 남은 가족들을 먹여 살려준다는 그런 처절한 믿음이 특공대를 낳는 힘이었다. 

가만, 내가 뭘 얘기하자 했더라? 미안하다 독자들아, 또 본령을 잃어버리고 딴 이야기로 샜다. 그럼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음 호로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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